[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경찰서에 신고할 필요 없는 기자회견, 미신고 불법집회는 아닐까?’
외견상 기자회견의 형식을 갖췄더라도 공동의 의견을 대외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모였다면 옥외집회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26일 지난해 2월 언론노조 조합원 20여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를 맡았던 언론노조 조직국장 백모(45) 씨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면 목적, 일시, 장소, 주최자 등을 적은 신고서를 옥외집회나 시위 시작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일정 장소에 언론사 기자를 초대해 대외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기자회견’의 경우, 이같은 신고의무가 없다.
따라서 급히 집회가 조직되거나 이외의 신고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기자회견 형식을 빌리는 경우가 적잖다. 특히 한쪽에서 집회를 열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나와 대치하는 ‘맞불집회’의 경우 기자회견으로 ‘가장’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같은날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전날 밤부터 야당 교문위 위원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TF팀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현장 확인을 시도하자, 소식을 접한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회원 40여명이 26일 오전 11시30분께부터 이곳으로 집결해 ‘맞불’을 놓은 것. 이날 이 단체 회원들은 120여명까지 불어났다.
이날 이들은 앰프와 마이크를 동원하고 피켓을 다량으로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 옥외집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어버이연합 관계자는 “기자회견이라 따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한 차례 해산명령을 내렸고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3시께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곳에서 혜화경찰서장 등을 폭행한 혐의로 단체 회원 고모(85) 씨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진보성향 단체나 인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둘러싸고 지난 12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열린 역사학계ㆍ대학생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과 자유발언대, 기습시위 등은 ‘역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화 반대를 주장하며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던 대학생 15명이 미신고 집회를 열고 경찰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전문가들은 집시법이 합법적인 신고 집회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해 위헌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하는 집회는 대부분 신고가 되지 않더라도 큰 충돌이 없는 한 넘어가는 것이 통상 관행이고 불문율”이라며 “헌법으로 집회의 자유를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가능한한 보호하는 방식으로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데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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