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채 해군 군사편찬과장 눈에 비친 홍은혜 여사
죽원(竹媛) 홍은혜 여사와의 첫 만남은 2002년 4월16일이었다. 벌써 13년이 흘렀다. 손원일 제독 전기집필에 필요한 인터뷰를 위한 자리였다. 이후에도 공적ㆍ사적인 관계로 많은 만남을 가졌다. 만남을 통해 느낀 감정은 홍 여사가 우리 해군 초대 참모총장의 아내라는 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그녀가 손 제독과 해군의 정통성을 더욱 빛내기 때문이다.
해군의 정통성은 우리나라 어떤 조직, 기관, 단체에 비교해도 우수하다. 특히 대표성, 창설자에 대한 존경심이 그렇다. 손 제독은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의 아들로, 일제 때 망명생활 중 ‘길림유자회’와 ‘여길학우회’ 조직을 통해 독립활동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해 오늘의 해군 기반을 구축했다. 평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그를 ‘위국헌신’의 표상으로서 ‘해군의 아버지’로 부르는 배경이다.
홍 여사는 남편과 해군을 위한 내조자로서, 때로는 주역으로서 큰 역할을 해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이런 호칭이 따르게 된 것은 홍 여사의 삶과 가치관 때문이다.
홍 여사는 죽원이라는 호대로 대나무처럼 곧고 순수하며 기품 있는 여성이다. 언제나 독립운동가, 해군창설자의 아내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오직 나라와 해군을 사랑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봉사해 왔다. 이화여전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녀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엘리트 여성이었다. 지금도 음악 외에 그림, 서예, 문학 등을 통해 기품 있는 여성상을 유지하며 자부심에 찬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홍 여사는 사사로운 마음과 물욕이 없는 삶을 살았다. 당시 그 정도의 직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자신이 소유한 집 한 채 없고, 자식들에게도 물려줄 재산도 없다. 손 제독이 해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 시절 의전상 받은 그림, 도자기, 서예작품 등이 제법 있었지만 해군과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기증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다.
홍 여사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었다. 사람의 천수대로 순응하는 것이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분이다. 올해 백수를 맞이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행사 요청이 오면 내일 병원신세를 지더라고 기꺼이 응한다. 또 항상 소외층 사람들 편에 서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얼굴을 비벼주곤 한다. 해군 창설기와 6ㆍ25전쟁 때부터 이미 몸에 밴 습관이다. 예전에도 몸빼바지를 입은 채 상이군인과 전쟁고아, 전쟁미망인들을 돌보는데 앞장섰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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