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쇄국정치에 불만 부친 축출 여론 이용 1970년이후 모든 권력 장악 경제성장·외교적 성과로 지지도 탄탄 이란 核협상 중재 등 평화상후보까지 현재 암치료중…후계선정 초미 관심
‘표리부동’
오만의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독재에 맞서 독재를 이뤘고, 평화를 위해 무력을 사용했고, 자립을 위해 외세도 활용했다.
술탄 카부스의 면모는 그의 권력 구축 과정에 가장 잘 나타난다.
카부스의 부친인 사이드 빈 타이무르 술탄은 재위 당시 석유개발로 경제난을 극복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등에 엎은 이맘(Immam, 종교지도자) 카리브의 반란(1954~1957년)으로 한때 수도 무스카트를 떠나 피난까지 갈 정도로 큰 곤경을 겪는다. 영국군의 도움으로 반란은 진압되지만, 사이드 술탄은 그 뒤 주변에 대한 의심으로 독재를 강화하고, 대외로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심지어 아들인 카부스까지 믿지 못했다. 때문에 카부스는 유년기를 궁궐이 아닌 자신의 모친의 집에서 보내야 했다.
카부스 왕자는 부친의 정책에 불만이 많았다. 개방적인 영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서구 교육문화를 경험한 그는 공포정치와 쇄국정책을 일관하는 자신의 부친과는 달리 오만 내 지배세력과 타협하는 데에 집중했다. 특히, 소외된 왕족과 망명정치인들과 교류해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에 도움을 요청해놓고서 쇄국정책을 펼친 사이드에 불만을 품은 영국도 카부스를 지원했다. 결국 카부스는 1970년 7월 자신의 부친 사이드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카부스는 권력을 잡자마자 여론전을 펼쳤다.
먼저 술탄에 오르자 왕족을 요직에서 배제하며 그 힘을 약화시켰다. 국민과 정책을 논하는 연례회의를 만들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슈라위원회에 여성참여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른바 ‘국민과 소통하는 지도자’로서 얻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모든 권력을 술탄에 집중시켰다.
전임 술탄과 마찬가지로 카부스 술탄도 국왕이자 국방장관이자 대법원장이자 국회의장인 것은 같지만, 왕족이던 실무 부서의 책임자들을 모두 그의 심복으로 교체했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에 모두 한 손에 장악한 셈이다.
‘무스카트와 오만’(Muscat and Oman)이라던 나라이름도 ‘오만 술탄국’(The Sultanate of Oman)으로 바꿨다.
독재를 감추기 위해 경제개발에도 힘을 썼다. 즉위하자마자 제1차 5개년 개발계획을 발표해 학교와 병원, 공공시설 확대에 힘썼다. 원유 수출자금도 경제 개발에 투자해 ‘20세기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국민들의 지지도 유지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오만에도 불어닥쳤을 때 카부스 술탄은 ‘경제’로 무마했다.
시위대를 강경진압한 카부스 국왕은 시위대의 구호가 ‘오만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라’ 등 경제문제를 주로 담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5만 개 만들고 구직자들에게 월 390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불만을 잠재웠다.
강력한 독재에 대한 유일한 견제장치인 국제사회의 여론도 외교로 조정했다.
중동 평화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특히 2013년 미국 등 서방 6개국과 이란의 핵협상에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만은 이란과는 중동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미국과는 19세기 이후 오랜 경제외교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 협상을 중재,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1954년 이맘의 반란 이후 사우디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사우디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한 걸프협력기구(GCC)에도 가입했다. 덕분에 중동 내에서도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앞세워 국내 지지기반을 강화했다. 독재군주이면서1996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1970년 카부스가 쿠테타를 일으킨 명분은 사이드 술탄의 독재와 쇄국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그 자신이 가장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독재자 카부스 술탄이 클래식음악 애호가인 점도 흥미롭다. 즉위 이후 ‘로열 오만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고 대규모 오페라 하우스 설립을 추진할 정도다. 히틀러 등 독재자들도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점과 닮았다. 클래식 음악 사랑은 그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나타내는 또다른 부분이다.
인도양을 호령하던 가문 출신 답게 카부스 술탄은 요트 애호가이기도 하다.
해안도시가 발달한 오만 국민들은 수상스키, 윈드서핑, 요트 등 다양한 해변활동을 즐긴다. 그 중에서도 상류층은 요트를 즐긴다. 카부스 국왕은 개인적으로 요트 8척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알 사이드’ 요트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가장 큰 요트로, 독일 조선사가 ‘해바라기’라는 프로젝트명으로 특별히 건조했다. 카부스는 요트를 전달 받은 당일 오케스트라 행사를 열기도 했다.
카부스에게 남은 숙제는 후계다. 카부스에게는 아들도, 형제도 없다. 하지만 카부스 술탄은 지난 2014년 항암치료를 위해 해외로 떠나며 “후보자 2명을 지목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만 미국은 카부스의 삼촌인 타리크 빈 타이무르의 손자를 유력한 후보자로 보고 있다.
타리크 전 총리는 1970년 쿠테타의 공신으로 왕족들이 요직에서 배제됐을 때도 그의 자손들은 예외로 권력에 접근이 허용됐다.
문재연 기자/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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