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석양빛이 드리운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소녀 옆으론 한마리 조랑말이 묵묵히 소녀를 따르고 있다. 소녀의 눈과 조랑말의 눈은 신기하리만치 빼닮았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로 가득찬 이 그림은 원로 서양화가 박돈(86)의 근작이다. 황해도 장연 출신의 노화가는 어린 시절 뛰놀던 몽금포 해수욕장을 잊지 못해 일평생 고향 바닷가를 그려왔다.
더없이 목가적이고, 몽환적인 박돈의 그림은 어지러울 정도로 ‘속도’가 강조되는 오늘의 시점에 거꾸로 ‘느림의 미학’을 선사한다.
이제는 꿈에서나 가볼 수 있는 북녘 고향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유화이지만 기름기를 쏙 빼고, 맑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돈 화백은 그림인생 70년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조선일보미술관과 청작화랑 두 곳에서 연다.
이영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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