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TV의 힘은 예상대로 강했다. 불합리한 현실, 상식을 벗어나 버젓이 자행되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들춰냈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저격한 연예계 스폰서 편의 영향으로 업계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업계에서 오랜 시간 몸 담고 있는 배우들이 하나둘 소신발언을 내놓고 있으며, 업계 관계자들도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배우들 한 목소리 “실제 일어나는 일, 각성제가 되기를”=지난 13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시크릿 리스트와 스폰서’라는 제목으로 연예계 스폰서 관행을 폭로했다. 프로그램에선 자신을 스폰서 브로커라고 밝힌 제보자로부터 ‘시크릿 리스트’와 함께 녹취파일과 사진, 금융거래 내역을 토대로 실체 확인이 어려웠던 스폰서 실태를 들여다봤다. 연예계 지망생 제보자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화려한 생활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가 낱낱이 드러났다.
방송의 파장은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더 컸다. 오랜 시간 자행됐던 업계 관행에 대한 분노와 개탄, 안타까움이 줄을 이었다. 배우 김민정과 한상진은 특히 방송에 대해 “실제 일어나는 상황들”, “지금도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말로 스폰서 관행을 기정 사실로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민정은 방송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늘 이 방송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땀과 열정을 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배우들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전달해주신 방송 관계자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나쁜 것은 나쁜 것 입니다. 땀과 노력으로 성실함으로 배우의 꿈, 충분히 이룰수 있습니다”라며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생각 버리십시오. 이 방송이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성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라고 덧붙였다.
배우 황승언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연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일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강요하는 것들이 많다”며 “어차피 거짓말과 속임수로 가득차 있는 저 세상을, 내가 바꿔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더 높이 올라가면 자기가 찾던 행복이 정말 거기에 있을까? 자신의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걸 찾아갔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배우 박하선 역시 “싫다. 일부의 일이 전체인 것처럼, 오해 받을 땐 더 속상하고”라며 “선택,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나를 속이고, 남을 속일 순 있어도, 인생을 속일 순 없다”는 글로 복잡다단한 심경을 고스란히 전했다.
배우 한상진도 “내 주위엔 매일매일을 묵묵히 걸어가는 배우들 많다. 앞모습만 스타가 되고 뒷모습은 부끄러울 것인가. 이유없는 돈에 현혹되지 말자”라며 “부끄러운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현실이지만 우리의 인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선택을 하는 또다른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고 말했다.
▶ “자발적인 것과 강압적인 것은 다르다”=연예계 관계자들은 스폰서의 실체에 대해 물으면 한결같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 아니냐”는 답변을 내놓는다.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으나 ‘풍문으로 떠돌고’, ‘사실상 존재한다’는 스폰서는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이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연예인나 활동이 뜸하고 무명에 가까운 연예인들에게 이 같은 제안이 많다.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스스로 스폰서를 찾기도 하고”, “현재엔 활동하지 않지만 과거 인기를 모아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의 경우는 품위유지를 위해 찾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스폰서에도 “자발적인 것“과 ”강압적인 것”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스폰서의 경우 “연예인이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로 또 다른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납’과는 의미는 다르다. 소위 ‘갑을 관계’에 놓인 양측 간에 이뤄지는 부당거래다. ‘성상납’은 을의 위치인 연예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이 강요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자 연예인들에게 성공을 약속하며 성접대를 받는 사례다.
지난 2009년 탤런트 고(故)장자연이 자살 직전 ‘성상납과 술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연예계엔 일명 ‘장자연 리스트’ 파문이 일었다.
스폰서의 경우 이 같은 성상납과는 다른 데다, 서로 간의 확실한 금전거래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서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의 일을 업계 전체의 ‘관행’인 것처럼 호도하는 시각도 위험하다는 입장을 전하는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기간은 6개월에서 2년,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까지 계약서에 명시돼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만남의 횟수 역시 구체적으로 기입돼있다. 그 이상의 금액이 오고가는 경우도 많다. “식사 한 번에 몇 백만 원이 오가는 연예인 역시 존재”한다.
스폰서로 얽힌 관계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 숨은 재력가 등이 신인배우나 지망생에게 제안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배우들이 “일부의 일이 전체의 일인 것처럼 오해받을 때 더 속상하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때로는 스폰서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택을 강요하는 사례, 미래를 담보로 거래를 제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이미 수년간 검찰과 언론에서 다뤘고, 암암리에 성행했던 스폰서와 성상납 사례들이 많았다”며 “선택이든 강요든 퍼져있는 연예계 스폰서는 도려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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