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증시가 장기 답보 상태를 보이면서, ‘장기투자ㆍ가치투자가 답’이라는 증권가의 정설을 비웃듯 초(超) 고위험, 초 고수익을 노리는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년째 박스권에 갇힌 증시에 더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기대 심리가 테마주의 과열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테마주 그룹은 정치인, 미국 대선(힐러리ㆍ트럼프), 구제역, 지카바이러스 등 150여개에 이른다.
각 테마에 속하는 종목이 적게는 10여개, 많게는 150여개에 달한다는 점에서 그 규모도 상당하다.
사회이슈나 기술변화에 따라 수백가지 테마가 양산되면서 테마주는 끝을 모르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테마주 형성, 그로 인한 개인투자자, 해당 기업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건 가상현실(VR)이다. 지난달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VR에 대한 강연이 진행된 데 이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관련 내용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게 그 발단이었다.
관련 기업으로 맨 먼저 입소문을 탄 한국큐빅의 경우 지난달 17일 주가가 28.93% 상승, 23일에는 52주 신고가인 8420원을 경신했다. 그러나 한국큐빅이 보유한 홀로그램 특허가 VR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주가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29일 종가는 전일대비 5.26% 하락한 5220원을 기록했다. 반짝 인기에 힘입어 올랐던 주가가 기업가치에 따라 제자리를 찾는 전형적인 ‘선급등 후급락’의 양상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의 몫이었다.
지난달 17~22일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한국큐빅의 주식 784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투자자들은 25일 보유 주식의 절반 규모(26억3200만원)를 팔아치웠다. 개미들이 불려놓은 주가로 외국인들이 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이상화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관은 주로 대규모 자금을 통해 큰 종목에 투자하는 데다가, 보유 비중의 한계 등으로 일부 코스닥 종목에 진입하는 데 제약요건이 많다”며 “이로 부터 자유로운 개인투자자들은 해당 종목의 수익성이 좋다고 생각하면 자산을 몰아쓰는 경우가 있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테마주’로 구분돼 기업이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개성공단이 가동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남북 경제협력주’가 일제히 폭락할 당시다.
고급 리조트 개발업체 에머슨퍼시픽은 지난 2008년 일찍이 금강산 관광지구 골프장ㆍ리조트 사업에서 발을 뗐음에도 불구, 남북경협주로 몰려 주가 하락의 쓴맛을 봐야했다.
에머슨퍼시픽은 지난달 11일 코스닥시장에서 11.71% 급락한 2만8650원을 기록했다. 회사의 주가는 지난 1월 북한이 수소탄 핵실험 성공 발표를 한 이후 한달간 30% 넘게 빠졌다.
지난해 중국 최대 민간 투자회사인 중국민성투자로부터 1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 제주 등 신규리조트 개발에 나서는 등 호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주가가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선거나 개각, 인선 등 정치이슈가 터질 때마다 부상하는 ‘정치인 테마주’도 근거없는 주가 등락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정치인 테마주에는 시세조정세력까지 가세하면서 ‘개미지옥’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대망론과 함께 등장하는 ‘반기문 테마주’는 정치 관련주의 대표격이다. 서원, 삼보판지, 일야 등은 반 총장의 행보와 함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 반기문 테마주의 공통점은 각 회사의 임원이 반 총장과 동문이라는 점이다. 서원의 한 사외이사는 반 총장과 하버드 케네디스쿨 동문으로 알려졌다. 류종욱 삼보판지 회장과 김상협 일야 사외이사는 반 총장과 같은 서울대 출신이다.
세 기업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반기문 테마주에 묶였는 지 알 길은 없다. 누군가가 테마주를 형성해 주가를 부양, 뛰는 주가를 추종하는 개인투자자가 추격매수에 나서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는 짐작만 나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세조정에 나선 세력들에 의해 뚜렷한 인과 관계가 없는 종목이 테마주로 형성, 피해를 보는 규모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지난 대선 이후 18개월 간 정치테마주로 분류된 147개 종목의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주가는 최고가 대비 평균 4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9개 종목(33%)에서는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각종 피해에도 불구, 테마주에 투자자가 몰리는 것은 ‘답답한 증시’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근 뚜렷한 호재나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그 돌파구를 테마주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귀책사유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한탕주의, 대박을 좇는 투자자들의 환상 등이 잘못된 투자문화로 이어지면서 테마주 광풍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일부 전문가들은 테마주를 ‘로또’에 빗대기도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 실장은 “수년간 상승폭이 제한된 일본 증시는 우리나라 증시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서도 테마주 열풍은 훨씬 덜 하다”며 “주가수익률이 박스권에 갇혀있다고 해서 반드시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테마주의 성행 자체는 투자자들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는 투자자가 경제지표, 기업실적 등 펀더멘털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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