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백자청화호작문호(사진)에는 소나무 위에 까치가 지저귀고 그 아래 호랑이가 앉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 초ㆍ중기에는 백자에 용(龍), 매화, 대나무 등 우상, 선비정신,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이 청화백자는 백성들에 친근한 민화(民畵)를 담았다.

서양미술의 역사가 고결한 신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에서 변화무쌍한 사물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했던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거쳐 대중에게 친근한 팝아트로 이어졌듯이, 조선 백자에 그려진 그림도 고결함의 표현, 미학의 추구 등을 거쳐 대중친화적인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백자청화호작문호는 도자기 그림 분야에서 가히 ‘리히텐슈타인 급’이다.

또 이 대학에는 고구려, 발해의 기와와 이 기와를 마감하는 수막새 등 와전(瓦塼)이 700여점이나 있다. 이들 중 연화문(蓮花文) 수막새의 경우 표현된 연꽃잎이 하트 모양이라 이채롭다.

연화문은 실크로드 인접국에서 일제히 발견되는데 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하트 모양의 이 연화문수막새는 문명의 교류 방식와 전달 흐름을 달리 해석할만한 여지를 주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어떻게 가져갔을까.

일제때 총독부와 결탁한 일본 고미술상이 우리 문화재를 도굴, 약탈한 뒤 일본, 미국 등지에 경매한 사실이 몇 년 전 확인되면서 온 국민의 안타까움이 커졌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추적도 속도를 냈다.

하지만, 우리 ‘얼’의 귀환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재단측은 국민이 이들을 구경할 기회라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현실적인 언급이지만 그렇다고 반환 노력을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된다. 원래 내 것이고 빼앗긴 것이니까. 내 치즈 더미를 찾아낸 것에 안주한 나머지 나태해지지 말고.

함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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