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준우승과 하늘과 땅 차이네요. 앞글자 하나 빠졌을 뿐인데 전혀 다르네요, 하하.”
네차례 준우승 끝에 거둔 생애 첫 우승. 그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울 줄은 정말 몰랐다”며 껄껄 웃었다.
올해로 프로 데뷔 꼭 10년째를 맞은 김해림(27·롯데)이 지난 8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달걀골퍼’가 황금알 트로피를 들어올린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우승컵 주인이다. ‘달걀골퍼’는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삶은 달걀을 하루 30개 먹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생애 첫 우승을 공교롭게도 치킨기업 주최 대회에서 한 데다 신묘한 꿈까지 더해져 이야기거리가 더 풍성해졌다.
김해림은 인터뷰에서 “잠을 제대로 못잤다. 멍해서 잠이 안오더라”며 “안먹어도 배불러서 저녁을 굶고 잤는데 새벽에 갑자기 배고파져서 늦은 식사를 했다. 그래도 우승은 정말 좋다”며 웃었다.
▶“후배들이 원망해요. 저 때문에 달걀만 먹고 있다고”=꿈 얘기부터 해야겠다. 김해림은 단독선두로 마감한 2라운드 후 인터뷰에서 “‘달걀 골퍼, 어머니(닭) 대회에서 우승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는 꿈을 꿨다”고 소개했다.
우승한 뒤 꿈 얘기를 했더라면 지어낸 거라고 의심(?)을 받았을 법한 흥미로운 내용. 하지만 그 꿈은 진짜였고, 그대로 현실로 이어진 예지몽이 됐다. 그나저나 미리 길몽을 입에 올리면복이 날아간다고 하지 않나. 김해림은 “사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2007년 2부 투어서 첫 우승을 할 때도 엄청 큰 메기를 한 손으로 낚아채는 꿈을 꿨다. 꿈이 좋아서 우승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정말 우승을 해버렸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신기한 꿈을 꿔서 대회 첫날 아침에 아빠에게 말했다”고 했다.
달걀골퍼로 유명세를 탄 뒤 성적이 오르자 후배들이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주니어 선수들이 언니가 그 얘기를 해서 아빠가 매일 달걀만 먹으라고 한다며 나를 원망한다”고 웃었다.
2013년 244.2야드(86위)였던 드라이버 비거리가 올해는 252.8야드(18위)로 늘어났다. 김해림은 “당연한 얘기지만, 달걀만 많이 먹는다고 장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웨이트훈련을 정말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거리를 늘리기 위한 팁을 묻자 “세게 휘두르는 느낌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스에 나가서 처음 몇 홀은 좀 비뚤게 나가더라도 내 온 힘을 다해 한 샷 한 샷 휘두른다는 느낌으로 쳐야 해요. 몸에 알이 배는 느낌이랄까. 몸살 난 것처럼, 두들겨 맞은 것처럼 세게 휘둘러야 그 근육이 발달되고 임팩트 느낌을 알게 되거든요.”
그린적중률 6위(73.4%)로 아이언샷이 장기인 김해림은 “아이언샷을 할 땐 양 팔꿈치가 몸에 조여서 다니는 느낌으로 친다. 아마추어들은 웨지샷도 풀스윙을 해서 거리 욕심을 내는데, 차라리 멀리 보내고 싶을 땐 한 클럽 더 길게 잡아 가볍게 컨트롤하는 게 좋다”고 했다.
▶“늦게 시작한 골프, 그래서 지금 스무살처럼 재미있어요”=130경기 만에 늦깎이 우승 신고를 한 김해림은 골프 시작도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 그래서 나이는 왕언니 급이지만 “스무살처럼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있다”고 한다.
서문여중 3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워낙 운동을 좋아해 운동선수를 하고 싶어 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직업으로 오랫동안 해도 좋을 골프를 추천했다.
“처음엔 골프가 빨리빨리 늘어서 좀 우습게 봤어요. 그런데 70대 초중반 스코어가 5년이 지나도록 줄지 않는 거에요. 아무리 연습해도 안돼 포기할 무렵 베스트스코어를 치게 됐죠. 재미있는 게, 그렇게 슬럼프가 3년 주기로 왔는데 그럴 때마다 베스트를 치게 되더라고요. 골프가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같아요.”
가장 아쉬운 대회는 역시 메이저대회인 지난해 KB금융스타챔피언십이었다. 김해림은 최종라운드에서 전인지에게 1타 뒤진 채 18번홀을 맞았다. 전인지가 티샷 미스를 해서 김해림에게 기회가 왔다. 하지만 긴장한 탓에 두번째 샷을 뒤땅을 쳤고 결국 보기로 마감했다. 전인지가 보기를 했기 때문에 김해림은 파만 해도 연장, 버디를 잡았더라면 대역전극으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김해림은 “그 장면이 TV에서 계속 재방송돼서 볼 때마다 참 스스로가 한심했다. 어떻게 세컨드샷을 저렇게 말도 안되게 쳤을까. 하지만 분명 내게 약이 됐다. 특히 전인지가 정말 침착하게,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도 자기 루틴대로 플레이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제가 우승한 모습이 계속 재방송되겠죠? 좋은 기운을 계속 받고 싶어요” 한다.
▶“첫 기부금액은 6만원, 우리집도 힘든데 왜 하나 싶었죠”=‘달걀골퍼’의 다른 별명은 ‘기부천사’. 프로 데뷔 후부터 상금의 10%를 꼬박꼬박 기부해왔다. 일찌감치 “첫 우승상금은 전액 기부한다”고 밝힌 그는 이번에 받은 1억원 상금을 ‘사랑의 열매’ 등에 기부할 생각이다.
첫 기부금은 6만원으로 시작했다. 2007년 5월 2부 투어 제니아-엔조이골프투어 1차전서 받은 생애 첫 상금이 63만6000원(14위)였다. 부모님은 10% 기부를 제안했다. 프로골퍼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버지가 남대문시장 자영업 일을 접으셨던 터라 가족 중 돈을 벌 사람은 김해림이 유일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엔 정말 싫었어요. 아니, 우리집도 어려운데 왜 남을 도와주나. 이해가 안됐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돈에 욕심내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나누자고 하셨어요. 봉사를 다니고 기부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정말 기부가 이렇게 좋은 거구나 느끼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상금랭킹 톱5, 내년엔 첫 상금왕. 차근차근 목표를 설정한 김해림은 기부 목표까지 또렷하게 세워놓았다. “10억원을 채우고 싶어요. 지금까지 2억원 했으니까, 앞으로 선수 생활 10년 더 하면 되겠네요. 충분히 가능성있는 시나리오 아닐까요? 하하.”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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