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회> 죽음의 계곡 38

골프가 핸디캡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실력이 현격히 차이나는 경우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100돌이와 싱글 핸디캐퍼가 함께 어울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팀을 둘로 나누어야 할 터. 하지만 이 대목에 신희영이 나서더니 엉뚱하게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두 팀으로 나누어서 훈련합니다. 강유리 선수와 백광돌 매니저… 둘이 함께 훈련하세요. 그리고 박 대리와 공 과장은 두 분을 따라다니면서 보필하세요. 캐디 역할도 하고, 잃어버린 공도 찾고….”

신희영은 2인용 카트 두 대에 그들의 골프백을 옮겨 싣도록 지시했다. 그들 네 명을 먼저 내보내면 자연히 한승우와 강준호만 남게 될 것이니 좌청룡 우백호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왼쪽엔 몸 친구, 오른쪽엔 언젠가 몸 친구로 만들고야 말 탐스러운 영계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호사할 일만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강준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코알라코스트를 따라 해풍에 흔들리는 야자수 사이를 거닐며 신희영의 마음을 흠뻑 뺏으려고 작정했건만, 웬걸… 한승우가 따라붙으면 오죽이나 거추장스러울까. 코스를 도는 동안 스킨십은커녕 농담 한마디라도 마음 놓고 지껄일 수 없는 처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팀을 짜면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회장님. 강유리 선수는 곧 LPGA에 도전할 특급 선수인데 공 과장이나 박 대리가 무슨 재간으로 보필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80타 정도를 기록하는 한승우 실장이 따라다녀야죠.”

“그럼 공 과장과 박 대리는요?”

“자네들은 골프장 밖으로 나가서 빅 아일랜드 관광이나 하지 그래? 골프도 못 치면서 페어웨이에 삽질이나 하면 뭐해? 나가서 맛있는 것이나 사먹고, 사진도 찍고… 그러는 편이 훨씬 알차지 않을까?”

“그래요, 두 사람은 밖에 나가서 관광이나 하세요. 하지만 강유리 선수가 제대로 훈련을 하려면 한승우 실장은 우리 쪽으로 붙어야지요. 강 선수와 매니저는 실전 팀, 우리는 아마추어 팀! 이렇게 다녀야 제격 아닐까요?”

장땡보다 높은 끗발이 삼팔 광땡, 끗발로 내리누르니 강준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한승우를 다른 팀으로 보내려다가 공연히 애꿎은 공 과장, 박 대리만 골프장 밖으로 쫓아낸 셈이었다.

“그럼 세 시간만 밖에서 놀고 오겠습니다.”

공 과장과 박 대리는 강준호를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았고, 강준호는 신희영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신희영이 누구인가? 그녀는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오너였다. 오너에게는 특유의 고집이 있게 마련, 한번 결정내린 일은 웬만해선 번복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지 않은가.

“훌륭한 결정입니다. 회장님.”

마침표를 찍은 사람은 매니저 백광돌이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강유리 선수와 호젓하게 라운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마냥 기쁠 따름이었다. 하와이 골프장엔 캐디도 없으니 굽이굽이 펼쳐진 남은 16홀을 단둘이 거닐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이 골프장은 두 명도 라운드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대통령 골프를 치듯 강유리 선수와 매니저 백광돌이 느긋하게 티샷을 한 뒤에 2인용 카트를 타고 유유히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지만 강준호는 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나, 저 그린 좀 봐요. 몰려드는 파도 때문에 그린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요. 저기까지 200야드라고 했죠? 그런데 까마득히 멀리 떠 있는 섬 같아.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한 실장님?”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오는 곳이라 했던가? 하지만 강준호의 귓가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한 실장님?’ 하고 묻는 신희영의 목소리만이 생생할 뿐이었다. 멀리 떨어진 그린을 바라보는 중이라서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도 그녀는 한 실장에게 눈웃음이라도 한껏 치고 있을지 몰랐다. 정말이지 머리 꼭대기의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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