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선 세 가지가 이슈다. 한나라당내 ‘호남배제론’ 갈등과 민주당의 ‘강남 깃발론’, 진보진영을 겨냥한 ‘색깔 수사’ 논란이다. 호남배제론 갈등과 강남깃발론은 한국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체적 진실과는 별도로 절차적 시비 거리를 노출한 간첩단,민노당 당비 의혹 등 ‘색깔수사’의 정치적 의미는 기소범위, 법원판결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하므로 논외로 하는게 맞다. 아울러 주민투표 등 포퓰리즘 복지 논쟁 역시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형국’이라 논해 봐야 소모적이라서 정치분석의 소재에서 버린다.
강남과 호남의 변화가능성에는 각각 묘한 심리학과 정치공학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강남 민심이 한나라당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상황이 지속될지 여부에는 유권자 개개인의 ‘생각과 현실 간의 차이’, 즉 인지부조화가 변수로 작용한다.
호남을 배제할 것이냐, 어렵지만 개척해볼 것이냐 하는 논란 속에는 묘한 정치공학이 도사리고 있다. 한나라당내에서는 국토의 동서를 가를수록 인구비율상 유리하다고 주판을 두드리는 쪽이 있는가 하면, 호남을 개척할 경우 없던 표가 새로이 더 생긴다고 계산하는 쪽이 있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최대 관심사는 강남의 변화 가능성이다. 손학규의 ‘분당 혁명’, ’강남좌파’논쟁, 강남 산사태ㆍ침수 이후 더욱 주목을 받는다. 4년전 한나라당 대 민주당 지지율이 8대2 수준이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6대4 수준으로 좁혀졌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강남에선 이명박 66.4, 정동영 14.7, 이회창 11.0%의 지지율을 보였다. 한나라당 민주당 양자대결로 환산하면 81.9% 대 18.1%이다. 서초구도 이런 계산법을 적용하면 딱 8대2였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강남-서초 4개 지역구 한나라당-민주당 맞대결 환산 수치는 ▷강남갑 78 대 22 ▷강남을 77대 23 ▷서초갑,을 모두 76.7대 23.3 이었다. 반년쯤 지난, 그해 가을,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후보는 강남에서 37%, 서초에서 29% 등 근래 보기 드물게 ‘30%’을 첫 돌파한다.(양자대결 환산 수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더욱 좁아진다. 한나라-민주당 양자대결로 환산하면 시장선거에는 63~64 대 36~37이었고, 구청장 선거에서는 60대40(민주당 39.9, 39.7)이었다. 교육감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초구에서 한나라당을 50%대로 처음으로 끌어내리고 41%의 상대점유율을 기록했다. 작년에 드디어 도전해 볼 의욕이 생기는 수치, ‘40’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5월29일부터 6월4일까지 ‘뉴스톡’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MRCK에 의뢰해 서울 45개 지역구 가상 총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남 4곳 중 여야 모두 출마 후보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강남을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41.1%, 민주당 34.8%를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양자대결로 환산하면, 한나라 54.15%, 민주 45.85%가 된다. 이 조사에는 최근 강남,서초지역 산사태ㆍ침수에 따른 주민의 허탈감, 당국의 허술한 예방, 방재 관계기관들의 말바꾸기, 책임전가에 대한 주민 분노가 반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정치권의 새로운 키워드 주목받고 있는 강남좌파(넉넉한 환경속에서 안정된 교육을 받으면서 개혁적 사고를 가진 부류)에 대한 재인식,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부자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 확산, ▷야권 단일후보의 반 한나라당 전선 구축 등의 변수까지 반영될 경우, ‘모르는 게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남에 던져진 돌멩이 몇 개가 기존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이미지에 변화를 가져올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강남 유권자의 특성을 봐야 한다. 흔히 강남이 한나라당 텃밭이 된 과정에서 작용한 것은 ▷‘부자는 보수다’라는 점 ▷‘강남에 살면서 부자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문화에 동화된다’는 점, ▷사표(死表) 방지심리 등이다.
던져진 돌멩이는 이런 것이다. ‘상식을 더 잘 아는 지식인들이 몰상식을 제거하고 사회발전을 선도해야 한다’, ‘강남의 중심에서 개혁을 외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과연 나는 진짜 보수였나’, ‘재해예방책 등 당국의 정책실패에 대한 분노는 비강남이나 강남이나 마찬가지인데, 언제까지 맹목적으로 찍어줄거냐’, ‘어? 나는 알고보면 서민인데, 강남산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의 행동을 따라하고 말았네’ 등등이다.
교육열이 세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사회를 인식하는 상식이 풍부하고 개선방향에 대한 판단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개혁적 기류를 선도할 지식인들이 보기에 작금의 개혁에 대해 어떤 방향인지 헷갈린다는 지적이 많다. 지식인이나 전문직이 어느나라든 진보성향을 보인다는 신광영 중앙대 교수의 분석도 있다. 바꿔말하면 개선과 변화를 권리행사, 배운것의 실천 등을 통해 주도해야할 강남의 지식인들이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강남형 인지부조화의 첫 번째 모습이다.
두 번째는 ‘서민은 변화를 원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서민이면서도 보수파를 지지하는 모습, 즉 ‘계층과 정치성향 간의 불일치’를 들수 있다. 강남의 세입자는 60%에 달한다. 이중 다른지역에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주민이 절반에 약간 못미친다. 즉 강북지역 평균 소득층이라고 할 만한 서민층 또는 중간층이 강남에도 35~40%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기집 없이 강남지역에 세들어 살고 있는 진짜세입자와 자기집이기는 하지만 서민층이 밀집돼 있는 지역을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챙겨줬다면 실질ㆍ잠정지지 세력을 늘 40%가량 가질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중간층이 스스로 ’나는 넉넉한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려는 성향을 ‘도어 노크(door knock)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그간 그런 심리가 강남지역 서민층 사이에 작용했었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다. 부잣집이 즐비한 이웃의 정치성향을 따라하는 경우가 있었다면, 그런 모습이 과연 지금도 가능할까 의문시된다.
셋째는 강남내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으며, 혁신을 열망하는 지식인도 있고, 자기 재산에 탈이 나지 않도록 지키려는 기득권층도 있는데, 지금까지 정치행위는 계층과 노선을 넘어 ‘지역주의’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강남지역 거주민 중 25%(전체 세입자의 40%)는 타지역에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분류해도 된다. “나 강남사람이야”라는 브랜드 때문에 강남의 몇가지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했다면, 그런 동일시가 영원할 수 있을까.
넷째는 잘하는 것도 없는데 맨날 찍어준데 대한 모종의 반발심이 생길 때가 됐다는 분석이다. 유권자의 일방적 사랑과 그 지역 정치인의 무관심 간 ‘나쁜 궁합’이 강남의 네 번째 인지부조화이다. 폭우때 보여진 방재대책은 ‘전국 최고의 노른자위’라는 닉네임을 무색케했다. 2011년 방재 대책에 관한한, 상황은 과거 조금만 비가 와도 물바다가 됐던 망원동 풍납동이 훨씬 나았다. 강남지역 주민의 속이 상할 만 하다는 것이다.
박영선 민주당의원은 “강남지역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라는 나올 정도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을 계속 밀어줬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처럼 지역주민을 나몰라라 하는 여당 정치인에 대해 강남지역에서 외면하는 변화가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박 의원은 “손학규 대표가 폭우에 상처받은 우면산지역에 달려가 아픔과 땀을 함께 나누고 강남의 다양하고 솔직한 민의를 대변할 ‘선수’를 투입하려고 하는 등 민주당은 강남의 변화요구에 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강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범여권에 대한 지지도의 변화가 강남지역에도 반영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나 변화가능성은 없다면서도 ‘강남좌파’논란, ‘폭우피해’ 등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8대2가 3년만에 6대4가 되고, 다시 올들어 5.5대 4.5가 된 터에 ‘폭우’와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타고 온 강남의 변화가 2012년 4월 총선에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달라진 것은 ‘한나라당 간판달고 나오면 무조건 된다’는 식의 태도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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