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가족의 구명활동을 펼치는 오길남씨가 5일 "김정일에 요청한다"며 "제발 죽기 전에 내 딸과 아내를 귀향시켜 달라"고 말했다.
오씨는 이날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장에서 "1994~1995년 쯤 국제 엠네스티와 1999년 탈북자를 통해 부인의 생사여부를 확인했지만 그 뒤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오씨는 독일 유학 당시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가 아내의 신숙자씨의 충고로 혼자 탈북한 뒤 가족과 만날 수 없었다.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는 수감소 생활 당시 오씨의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며 "신씨가 수용소 주식인 옥수수가루로 와플을 구워줬다"며 "깔깔한 옥수수가루 대신 과자같이 구운 와플이 굉장히 맛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기자회견 장에는 오길남씨 외에 4명의 탈북자들이 정치 수용소 수감의 참상을 전했다. 김영순(여ㆍ74)씨는 평양예술학교 출신으로 성혜림의 친구인데다 김정일의 사생활을 잘 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수용소에 끌려가는 사람은 다들 죽었다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끌려가 생사여부를 모르고, 부모님은 영양실조로 돌아가셨고, 아들은 중국 국경을 넘으려다 총살당했다"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
요덕 수용소에서 4년간 수감된 정광일씨는 수용소 생활의 노동강도, 식량 배급 등을 언급하며 "구타보다도 굶겨 죽이는 경우가 많다"며 "하루 업무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인다. 하루 800kg의 풀을 베고 나르는 등 고된 노동에 밥까지 못 먹으니사람들 일주일도 못 버티고 쓰러져 갔다"고 말했다. 그는 수감자들의 피폐한 정신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명의 잘못으로 30명의 부대원들이 집단체벌을 받을 때, 그 한명을 나머지 사람들이 때려죽이는 경우도 많다"는 증언이다.
13세부터 28년간 수용소에서 살았다는 김혜숙씨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도망치겠다는 생각을 못했다"며 "인권이란 말이 있는 지도,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만 바빴다"고 말했다.
이자영기자nointeres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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