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희망차야 할 설을 앞두고 우울한 자살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는가 하면 80대 노인이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를 견디지 못한 한 남자가 세상을 등진 일도 있었다.

▶세밑 잇딴 자살=풍성해야 할 명절이라 더욱 자신의 처지가 비관됐던 것일까. 설 연휴 첫날인 21일 생활고에 시달려온 30대 엄마가 자신의 두 딸과 아들 1명 등 자녀 3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부산 북구 화명동 모 아파트에서 L(37ㆍ여)씨와 10살, 9살 난 초등학생 딸 둘, 4살 된 아들 1명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한 사람은 남편인 P(40)씨.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려던 P씨는 눈앞의 가족들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작은방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아내 L씨는 스카프로 목을 메 숨져있었다. P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늘 오전 3시까지만 해도 부인이 TV를 보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조사 결과 숨진 L씨는 남편이 운영하는 합기도장 사업이 잘되지 않자 최근 한달 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L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아이들에게 독극물을 먹여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명절은 먼저 떠나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온 가족이 함께 모였던 옛 설날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지난 20일 먼저 떠난 딸을 그리워한 한 5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오후 7시53분께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A(58ㆍ여)씨가 추락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A씨 옆에는 생전에 딸과 같이 키우던 애완견이 숨진 채 함께 발견됐다. A씨는 6년 전 딸이 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숨진 뒤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왔고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죽고 싶다”고 자주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5층에 사는 A씨는 딸이 뛰어내렸던 9층으로 가 몸을 던졌고 남편에게는 “잘 살아라”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경찰은 딸의 죽음으로 우울증을 앓게 된 A씨가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이들도 잇따랐다. 지난 19일 오전 2시께 여수시 신기동의 B(19)양 주택 안방에서 B양의 전 남자친구 C(20) 씨가 방문에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C 씨의 친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C씨는 숨지기 전 B양에게 “극단적 방법을 동원해 미안하다”고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친구들에게도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C씨가 여자친구인 B씨가 경제적인 능력을 이유로 헤어지자고 하자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있다.

18일에는 한 80대 노인이 자신의 방에서 홀로 목을 매 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9시14분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져있던 80세 노인 P씨가 외손자에 의해 발견됐다. P씨는 평소 지병뿐 아니라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배씨가 신병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하필 왜 명절때 자살?=전문가들은 사회적 양극화 현상과 우울한 소식에 무력감을 느끼는 개인들이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되는 명절 분위기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을 앞둔 시점엔 과거에 대한 회한과 반성 때문에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A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새해나 명절은 새로운 희망을 갖고 마음을 다잡는 시기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큰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며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 치료전문가 B씨는“명절이 되면 조상생각과 고향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 때 지난 삶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게 돼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