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바람 부는 길(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타기 전엔 언제라도 미쳐버릴 것 같고, 타고나면 결국엔 미쳐버리고야 마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스파이더!’
아무리 보아도 지금 이 순간 전진후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스파이더를 모는 드라이버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힘이 넘치는 머신. 앞에서 바라보면 초원을 질주하는 갈색 표범과 같고, 뒤태를 보면 물살을 가르는 백상아리의 모습을 닮은 차. 문득 옆에서 바라보면 손톱으로 찢어낸 듯한 백상아리의 아가미를 통해 뜨거운 열정과 함성을 쏟아내는 환상의 머신!
“그래요. 아무데로나 가요. 커튼이 쳐진 곳이면 돼요.”
미친 것일까? 조금만 정신 차리고 유심히 보면 전진후가 모는 차는 생산된 지 30년도 넘은 고물차였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껍데기는 불에 탄 모습 그대로, 몬테카를로 랠리의 험한 코스를 달리며 생겨난 상처투성이의 못생긴 고철덩이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어차피 목숨을 함께 건 파트너가 된 이상 몸도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고요.”
미친 것이겠지. 눈을 감고 귀로 듣기만 해도 전진후의 목소리에는 사심이 그득함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사탕발림을 해서든지 침대 위에서 한 번 뒹굴어보려는 마음을 그는 결코 숨기거나 예쁘게 포장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섹스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점을 개의치 않았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야수로 돌변하고, 갑자기 온몸을 물어뜯으며 괴성을 지르더라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1974년 산 치타는 최고속도로 어디론가 내달리는 중이었다.
“자, 전국 어디서나 10분 내로 모텔을 찾을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드디어 모텔을 찾아냈는지 신나서 떠드는 전진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권도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곤 했다. 영혼을 울려낼 것만 같던 권도일의 목소리가 그리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소식도 없이 떠나가고야 말았다. 나쁜 사람이었군, 그 남자…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떠나간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자 언제 그토록 뜨거운 음성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는가 싶었다. 곧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몸매가 죽이더라고.”
“커튼부터 치라니까요.”
“글쎄 몸매가 죽인다니까? 가슴, 허리… 내가 미쳐!”
전진후는 허겁지겁 그녀의 옷부터 벗기려 했고 그녀는 몸을 돌려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전진후는 결코 다정하거나 부드러운 남자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어쩌면 난생 처음으로 레이싱 모델 출신의 늘씬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여인과 마주했는데 뜸들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몸이 달아올라 37도 2부를 향해가고 있는데 언제 커튼을 치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할 겨를이 있단 말인가.
“도저히 못 참겠어. 일단 하고 보자.”
전진후는 다짜고짜 그녀를 돌려 세우더니 한쪽 팔로 허리를 휘어 감고 나머지 손으로 그녀의 점퍼를 벗기기 시작했다. 대낮이었으므로 모텔에 투숙해 있는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부스럭부스럭 옷 벗겨지는 소리와 전진후의 거친 숨소리만이 모텔 가득히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점퍼를 벗기자 의외로 얇은 티셔츠 한 장만을 걸친 그녀의 상체가 드러났다. 몸으로만 본다면 그녀야말로 4,961cc의 엄청난 배기량에 6단 기어를 장착한 람보르기니와 다름없었다. 엔진에 열이 오르기만 하면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이 3.5초에 불과한 최고급 머신. 그런 머신이 눈앞에 꿈틀대고 있었으므로 전진후는 호흡을 제대로 조절할 수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미처 옷을 다 벗기기도 전에 두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돌려 안았다. 그 바람에 검은색 스타킹이 찢어지면서 팬티에 돋아나있던 흰 꽃무늬 레이스가 활짝 드러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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