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바람 부는 길(4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언제 또다시 잠이 들었던가? 권도일이 다시 깨어난 곳은 베들레헴 종합병원 내과 입원실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입원상태임에 확실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베드 위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아 곰곰이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머릿속엔 지푸라기가 그득 들어있는 것 같았지만, 제임스 리 박사와 만나 주고받은 내용은 선명히 기억할 수 있었다.

“완쾌되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여행사 가이드가 권도일의 옷을 챙겨든 채로 입원실을 지키고 있었다. 환한 표정으로 보아 그는 권도일의 퇴원을 진심으로 반기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어째서 여기에 누워있지요?”

“어떻게 되다니요? 나흘 전 새벽에 이 병원 응급실로 들어 오셨잖아요? 그 후에 선생님께서 저를 쫓아내셨고요.”

“쫓아내요? 하긴… 그런 셈이지요. 거기까진 기억합니다.”

권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새벽 6시, 권도일은 미리 약속했던 이스라엘 Urban사의 직원을 비밀리에 만나기 위해 가이드를 억지로 되돌려 보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이후로N-Dos단에 끌려가기 까지는 아무런 기억도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제임스 리 박사를 만나고, 다시 기억을 잃고… 이제 눈을 뜨니 이곳 입원실에 환자복을 입은 채로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무려 나흘이 지났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가이드는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잠 좀 주무셔야겠다고 절 내보내셨지요? 저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8시 경에야 응급실로 전화했지요. 웬걸, 식중독으로 인해 사흘 이상 입원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더군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함께 온 여행객이 수십 명인데…”

나흘간이나 입원했다고? 그 사이에 4일이란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권도일은 입원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달력이 아니었으므로 바뀐 날짜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요? 벌써 나흘이나 지났다니 놀랍군요. 잠시 꿈을 꾼 것 같습니다기만. 너무 걱정 마세요. 어차피 식중독 때문에 일행을 따라다니지도 못했을 테니… 다른 분들은 예정대로 재미있게 여행하셨습니까?”

“그럼요. 예수탄생 성당에 도착하면서 부터 모두들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그곳을 둘러본 후에 바로 옆에 있는 카타리나 성당에서 미사를 들이더라고요. 그 성당이 188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세운 것인데, 수도원에 들어서면서 성모상이 보이고 그 아래에 예로니모 성인의 모습이 새겨진 기둥이 보이지요. 그곳에서…”

가이드는 여전히 헌신적이었다. 그는 예기치 않은 병으로 인해 성지순례를 하지 못한 권도일에게 지금이라도 일일이 성지를 소개할 요량인 모양이었다.

“허허, 그만 하시지요. 퇴원하려면 환자복부터 벗어야겠습니다. 옷 갈아입을 동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실래요? 제 전화기도 가지고 계시지요?”

권도일은 잠시라도 가이드를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 먼저 거성의 재벌2세와 통화하기 위해서였다. 재벌 2세와는 하루에 세 차례씩 의무적으로 통화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단 한 차례도 지키지 못한 채 벌써 나흘이란 긴 시간이 흐르고야 말았다.

“권도일 씨, 미쳤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겁니까?”

국제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재벌2세의 불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권도일로서는 무어라고 변명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계획했던 대로 Urban사의 직원을 만나지도 못했으며, 느닷없이 납치되어 시리아 동북쪽 오지에까지 다녀온 사실을 어찌해야 전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Urban사에 뭐라고 지껄였기에 Air Mule에 관한 모든 개발 계획을 당장 파기하자는 답변이 왔냐는 말입니다.”

흥분을 이기지 못했던지 재벌2세의 전화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을 이기지 못했던지 재벌2세의 전화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