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바람 부는 길(5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재벌 2세와 높은 양반의 만남은 게릴라 레이싱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긴박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 서로 간에 산적해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 2000년이던가요? S 전자에서 개발한 직립형 로봇 말입니다. 그 로봇의 이름이 ‘아시모’였지요?”

“네 맞습니다. 외발로 설 수도 있고, 시속 6킬로미터로 달릴 수도 있는 로봇입니다. 특수 카메라를 장착해서 사람을 식별할 수도 있는 천재 로봇으로 통합니다.”

재벌 2세와 높은 양반과는 나이 차이가 제법 심했다. 적어도 스무 살 남짓 차이가 나는 정도였으므로 둘 사이의 대화는 자칫 건조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높은 양반은 재벌 2세를 한껏 예우했고 재벌 2세도 친밀하게 그에 응했다.

“그리고… 2009년 여름 무렵이던가요? 1인용 이동기구라고 할 수 있는 모빌리티가 출시되었지요?”

“1인용 이동기구요? 아, U3-X 말씀입니까?”

“이제 생각이 나는군요. U3-X… 맞습니다. 2000년에 개발된 로봇 아시모의 밸런스컨트롤 기술이 제대로 적용된 제품이지요. 앞, 뒤, 대각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신기한 소형 모빌리티 아닙니까?”

“그래도 자동차 반열에 끼워 넣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럴까요? 어쨌든 높이도 65센티미터에 불과하고, 무게도 10 킬로그램이 채 안 나가고… 또 뭐냐, 내장된 리튬이온 배터리로 무려 1시간이나 연속으로 운전할 수 있으니 대단한 물건 아닙니까? 이제 굳이 자동차를 탈 필요가 없어졌어요.”

높은 양반은 이렇게 대화를 이끌었다. 어눌한 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시모’라든지 ‘U3-X’에 대한 모든 내용을 훤히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시모의 기술이 U3-X에 적용되기 까지 겨우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 그래요?”

“9년이면 짧은 세월도 아니지요. 요즘 항간에서는 1년이면 세대차이가 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재벌 2세는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높은 양반, 그가 아시모라든지 U3-X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벌 2세로서는 아직 높은 양반의 의중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1년이면 세대 차이가 날만하지요. 가만 있자… 올해가 벌써 2012년 아닙니까? U3-X라는 모빌리티가 출시된 지도 벌써 3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벌써 세대가 세 번쯤 바뀌었을 시간이군요. 그래서 말씀인데… 그 긴 세월을 거성 자동차에서도 허송세월로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3년 동안 거성과 이스라엘 간에 비밀리에 진행되어 온 일을 위에서도 잘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높은 양반은 손가락을 들어 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 곧 하늘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추진해온 거성의 일들이 국가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국가안보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황 때문에 영향이 생겨났을 경우 파급효과도 그만큼 커지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자고 했습니다만…”

높은 양반은 매서운 눈초리로 재벌 2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