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7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5

‘소녀경’을 읽다보면 남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란 얼마만한 체구일까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다. 한아름 푸짐하게 안기는 글래머가 좋을까, 아니면 멀대처럼 가늘고 기다란 여자?

그 해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무릎 위에 앉혀놓고 뱅글뱅글 돌릴 수 있을 만한 체구여야 한다는 것! 감각적인 호불호를 떠나 오로지 ‘뱅글뱅글’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 해답을 응용하면 이렇다. 체구 큰 남자가 조그만 여자와 노는 것은 아무래도 예쁘지 않을 것이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들러붙은 형상 아닐까? 또한 키 작은 사내가 170㎝를 넘나드는 쭉쭉빵빵 글래머를 탐하는 것도 그리 추천할 바 아닐 것이다. 여자에게 매달려 위 아래로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고달플까?

그러니 몸집이 큰 사내는 자기보다 약간 작은 여자를, 몸집 작은 사내는 보다 더 작은 여자를 만나서 무릎 위에 앉혀놓고 뱅글뱅글 돌리다 보면 모름지기 선계를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난 여자들의 잘록한 발목을 잡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찢어진 ‘소녀경’을 읽었는지 유민 회장은 눈을 질끈 감고 양은혜의 두 발목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하긴 두 눈을 질끈 감았으니 그녀가 욕조에 가득 담긴 물속에서 돌며 어푸어푸, 꼬로록거린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겠지. 그만큼 그는 넋이 빠진 상태였다는 말이다.

언젠가 TV 음악프로에서 포크송을 잘 부르는 어느 가수가 운동삼아 제자리돌기를 서너시간씩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방 가운데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다 보면 처음엔 어지럽기도 하지만, 점차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고 보기와는 달리 운동도 제법 되더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 유민 회장은 그런 류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은 일말의 도덕심 때문인지도 몰랐다. 남녀상열지사에 무슨 도덕심을 따지냐고? 모르시는 말씀, 남녀상열지사에도 군자의 도가 있는 법. 아래쪽에서 위로 여자를 올려보는 일은 아무래도 어색하기만 했던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빙빙 돌리는 중이었지만 그녀가 물구나무 선 자세였으니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으르르르…읍!”

그녀는 숨을 쉬기 위해 욕조 속에서 난리를 쳤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 뻗대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상체를 숙여 유민 회장의 허벅지를 잡아보려 했지만 물에 젖은 그의 허벅지는 웬걸, 미끄럽기가 기름 바른 생쥐와 같았다. 점점 호흡은 가빠지고…무언가를 잡아 상체를 일으켜 세워야 할텐데 잡을 것은 없고….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옷 벗고 서있는 남자의 몸을 훑어가다보면 얼떨결에라도 지겟작대기가 잡히겠지. 하물며 무아지경 선계에 들어선 남자의 지겟작대기야말로 얼마나 튼실하니 손으로 잡기에 좋을까.

“아우! 너무 세게 잡지 말아요. 거긴 예민한 곳이에요. 아프다고!”

그걸…‘어서 진도 나갑시다’라는 사인으로 알아챈 유민 회장은 서둘러 욕조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양 손으로 그녀의 두 발목을 움켜쥔 모습 그대로였다. 양은혜 역시 죽기 살기로 그의 지겟작대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놓치기라도 하면 물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기에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은혜 씨는 역시…생각만큼이나 와일드하군요.”

유민 회장은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사나이 체면을 생각하며 끝끝내 참아야만 했다. 옆에서 보면 알파벳 소문자 b를 연상시키는…두 남녀가 얽혀 있는 모습이 차라리 비장하기도 했다.

“회장님, 꼭 죽을 것 같아요.”

이 말을 섹스도 잘한다는 뜻으로 들었는지 유민 회장은 혼자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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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