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 4人이 말하는 한·일관계 어제, 그리고 오늘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어떠한 문구도 이보다 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잘 표현하지는 못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대국’ 일본이지만 유독 한국인들만이 일본을 과소평가한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무성하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은 1965년 한ㆍ일협정을 통해 이미 정리된 사안이라고 한다.그러나 역사의 잔상은 여전히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다. 당연히 이 잔상은 앞으로의 양국 관계에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위 ‘일본통’으로 통하는 역사ㆍ사회 전문가들로부터 한ㆍ일 관계가 어떻게 전개돼 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들어봤다.
▶대일(對日) 이슈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 커져=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뤄져 온 그간의 노력들이 이미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다. 개인, 한국민, 한민족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문제로 인식이 확산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해보상금으로 나비기금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대학원 HK연구교수 역시 “국제사회에서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구현되는 방향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봤다. 그러나 신 교수는 “그 원인을 국력의 신장에서만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상의 원인이 한국의 국력이 과거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부국강병의 논리, 더 나아가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다른 해석을 내놨다.
주변 국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국력뿐 아니라 한국만의 가치를 지녀야 국제사회에 설득력이 있고 국가 차원의 운동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미국이 1980년대에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했을 뿐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와 같은 가치를 내세워 패권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사례를 들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간단체와 학계의 노력으로 과거사 문제가 공론화가 되고 있다”며 “일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민간단체들의 성과가 역설적으로 빛을 본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 산적=임혁백 교수는 최근 밀실협정으로 문제가 됐던 ‘한ㆍ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언급하며 “한ㆍ일 군사정보협정은 단순 정보교환의 의미가 아니다. 바로 일본의 군대, 즉 전후 일본의 기본이 된 평화협정을 깨고 군사국가, 그들이 말하는 정상국가로의 초석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독도 등 과거사 청산이 안 된 상황에서 미래의 동반자로서의 일본만을 강조하는 것이 국민정서상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신주백 교수 역시 교과서 왜곡이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한ㆍ일 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도, 위안부 문제는 교과서 왜곡 문제와 연결돼 있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제2차 세계대전과 연결돼 있다는 것. 신 교수는 “각 사안마다 특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식민지 지배와 연결된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중 하나라도 해결된다면 다른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사안들을 풀기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알렉산더대왕처럼 일본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국 간의 부단한 대화 필요…긴장감 늦춰선 안 돼=남상구 연구위원은 “한ㆍ일 역사 문제가 불거지면 다각적으로 당당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독도 문제가 촉발될 때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고, 연구소 등 전문가들은 독도가 왜 우리 영토인지 역사적, 국제법적 논리와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국제사회로 확산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일반 국민들은 한국민으로서 독도가 왜 한국땅인지 근거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을 갖고 관련 지식을 쌓아야 한다”며 독도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일본이야기’의 저자인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항시 일본에 대한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된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는 스스로 잘못됐다는 생각을 안 한다. 일본과의 현안을 다루려면 항상 긴장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과거에 매몰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663년 백촌강 싸움이나 1592년 임진왜란은 모두 중국과 일본 간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항상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위험에 처해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임혁백 교수 역시 극일(克日)을 위해 한ㆍ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외교적 역량을 키워갈 것을 당부했다. 임 교수는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일본은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며 “미국을 활용해 일본에게 압력을 가하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선결될 때 앞으로의 양국관계가 발전적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친미, 종미가 아닌 용미가 필요한 이유”라고 전략적 자세를 강조했다.
<사회부 사건팀> /th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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