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중국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여류화가인 두진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추이완(毬丸)을 하는 여인들’이라는 그림이 있다. 한쪽 끝에 삼각형 나무판을 댄 긴 막대기를 든 3명의 여인이 작은 공을 어떻게 처리할까 들여다보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3명의 여인들 옆에는 또 다른 막대기 2개씩을 든 어린 소녀들이 서 있다. 중국은 이 그림을 근거로 ‘스코틀랜드보다 500년이나 앞서 골프를 즐겼다’며 골프의 발원지는 자신들이라고 주장한다. 막대기는 골프채, 어린 소녀는 캐디라는 식이다.
중국이 만리장성 길이까지 ‘입맛’에 따라 조정해가며 고구려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골프 발원국’이라는 주장은 귀엽게 봐줄 법도하다. 새삼스럽게 추이완 얘기가 떠오른 것은 우리 외교관들이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골프로 물의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형 대사를 비롯한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광복절인 15일 베이징 인근 한 골프장에서 단합대회 성격의 골프대회를 가졌다. 대사관은 이 대사가 지난해 5월 부임한 이후 광복절과 개천절 등에 맞춰 단합대회 형식의 골프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대사는 정통 외교관료 출신으로 중국 외교관들과 종종 골프라운딩을 갖는 등 골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국익과 국익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외교전선에서 골프가 아니라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한다해도 성과만 거둘 수 있다면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 골프대회를 가진 때가 한국과 일본간 독도문제를 둘러싼 외교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이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비장한 어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전시(戰時) 여성인권 문제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었다.
한-중간에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서해상 중국어선 불법조업, 탈북자문제, 그리고 최근에는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고문 의혹 등 외교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기초라 할 수 있는 중국내 수감 인원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모두 주중대사관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겠지만 대사관이 1차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이날은 ‘김정은-장성택 공동정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장 부위원장의 방중 움직임 파악 및 분석과 정보수집 및 보고를 책임져야할 대사관 직원들은 골프대회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사실 외교부 출입기자로서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논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오류, 카메룬 다이아몬드 채굴권 CNK 사건,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 등을 거치며 위축될 대로 위축된 외교부를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울 정도다. 국내에서 여야간, 중앙과 지방간, 부처간 갈등 조율도 쉽지 않은 마당에 대다수 외교공무원들은 국제무대에서 하루하루 벌어지는 치열한 외교전을 치르는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김성환 장관이 지난해 3월 상하이 스캔들 이후 근무기강 해이에 대해 엄중 대처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해외 파견 외교관들의 음주추태, 회계처리 사고, 성희롱 논란, 폭행 연루 등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의 주중대사관 골프 파문은 또 한번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외교공무원들의 힘을 뺄게 분명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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