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시류(雙翅類)들을 비역질하게 만들기 (Sodomiser les dipteres)
파리를 양성애를 지닌 존재로 만들거나 혹은 더 고약한 모습으로 바꿀 수가 있을까? 최근 스위스의 연구진들은 성의 구분없이 같은 종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유전자 변형 곤충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파리들이 다른 수컷이나 암컷에 동일하게 이끌리기에 진정한 ‘일탈적’ 돌연변이체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성애가 유전적인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새 소식을 실어나르고 있는 이-일리코(E-Illico)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동성애의 신비’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스위스 로잔대 게놈통합센터 연구원인 야엘 그로장(Yael Grosjean) 박사에 따르면 유전자의 일부 조작만으로도 가장 덜 편향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초파리들이 섹스 파트너를 수컷 쪽으로 선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동성애 성향을 결정 짓는 신경세포 외부의 글루타민산염 비율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와 같은 연구는 수컷 돌연변이체들이 다른 개체들 뒤에 위치하면서 사랑스런 원 형태로 집결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야엘 그로장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뒤집을 수 있기에, 동성애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게 한다”고 그는 덧붙이고 있다.
우리의 충동이 선천적인지 아니면 후천적인지를 알아내는 문제가 남아있다. 일부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잘됐군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장미꽃을 담을 화병을 사람들이 발견해내는 중이라는 사실을 마치 페스트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동성애가 자신들 표현대로 ‘생물학적 실수’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우리들 사랑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존재를 과학이 결코 입증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간호를 받아야 하는 병자들이라고 보수주의자들이 더이상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이 우생학(優生學)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이들에 대한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영국 협회 스톤월(Stonewall)의 대변인은 과학이 우리들 성생활과 사랑과 관련된 삶으로부터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우리들이 맛보고 있는 쾌락의 기원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어디에 소용이 있을까? 현재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이성애 취향의 남자들은 자신들이 왜 여자를 좋아하는지 자문해봐야 할까? 딸기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자들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할까?
인간들의 성적 취향이 문제가 될 때 왜 과학자들은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재간의 부족을 개탄해대는 것일까? 이러한 연구들이 도덕과 불건전한 호기심, 통제에 대한 욕구를 뒤섞어놓은 모호한 이유들 때문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많은 게이 투사들은 목적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연구에 대해 극도로 불신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성적 취향을 교정하거나 혹은 보다 우스꽝스럽게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바꾸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어떤 쓸모를 지니고 있을까? 치명적이지 않은 일부 무기들, 우리가 실험실에서 고심해 제작해낸 ‘미래 무기들’ 중에서 병사들을 통제 불가능한 섹스 동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제품이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룹 섹스를 미친 듯이 갈구하는 군대 풍경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겠는가.
파리로 하여금 무차별적으로 교미하게 만드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오자. 의미가 없는 만큼이나 어렵기 짝이 없는 이러한 연구는 무익한 노력을 지칭하는 온갖 표현을 열거해볼 수 있는 더없이 이상적인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쌍시류들을 비역질하게 만들기’라고 이야기한다.
벨기에서는 ‘털 가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 ‘엉덩이 털을 4등분하다’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세르비아에서는 ‘달걀 속에서 털을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캐나다에서는 ‘작은 벌레를 찾다’란 표현이 무익한 노력을 지칭하는 문구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에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자는 엉덩이로도 파리를 쫓아낸다’란 표현을 구사한다. 원어로는 ‘El que no tiene nada que hacer, con el culo caza moscas’라고 표현한다. 적어도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결론이 아닐까.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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