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4ㆍ13 총선 공천과정에 개입한 흔적이 뚜렷해지고 있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ㆍ윤상현 의원에 이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나서 대통령의 뜻을 운운하며 지역구 이전을 강요했던 사실이 전화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이게 진짜 대통령의 뜻이었는지, 아니면 대통령을 빙자해 호기를 부린 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최대 정당인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개입에 대해 당사자들은 정치적, 법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국회의원 공천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제도화하는 일이다.
4ㆍ13총선에 대해 많은 분석이 제기되었지만 새누리당의 패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파행적 공천과정이었다. 올해 초만 해도 새누리당은 180석까지 차지할 수 있으리란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여러 가지 실책이 있지만 역시 결정적인 건 파행적 공천과정이었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오만한 공천과정은 김무성 대표가 결재를 거부하는 ‘옥쇄파동’으로 치달으며 지지자의 환멸을 자아냈다. 공천파동의 진원지가 어디였든 그건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오만함으로 비쳤고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로 이어졌다.
어떤 점에서 20대 총선은 19대 총선의 데자뷔였다. 19대 총선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됐고, 수세에 있던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박근혜 위원장을 내세웠다. 당명까지 바꾸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오만했던 민주당은 공천과정에서 파행을 자초했다. 선거 막판에 터져 나온 김용민 후보의 막말 사태가 결정타였다. 당시도 방송3사의 여론조사는 틀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비슷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152대 127,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19대와 20대 총선결과가 보여주는 하나의 사실은 공천과정의 파행성이 선거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처럼 여야정당에 대한 지지가 비슷하고 30%대의 부동층(浮動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국 승패는 비례대표 선발을 포함한 공천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80석을 예측하며 기고만장했던 시점과 4ㆍ13의 몰락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공천과정의 파행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대 선거에서 오만한 민주당이 망했다면, 20대는 방자한 새누리당이 ‘한 방에 훅 갔다’. 선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기의 공천파동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인이었다. 바로 이때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정치판을 주목하고 있던 부동층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부동층과 함께 순식간에 충성도가 낮은 지지층이 빠져나가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연출하게 된다.
공천과정의 파행을 줄이는 방법은 좋은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공천규칙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역구든 비례대표 후보든 이해관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사전에 정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천과정을 진행할 때 파행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편한 방법은 지역구 공천에 상향식 공천을 법제화하는 일이다. 비례대표를 인재영입의 창구로 삼고 지역구는 지역구민의 뜻에 맡기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국민참여제의 확대도 가능할 것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공천과정의 제도화는 한국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것이 분명하다. 국회의원 선출과정의 제도화는 위로는 대통령 선출과정의 제도화로 발전하고, 아래로는 지방자치 후보선출과정으로 확산될 것이다.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절차인 공천과정이 제도화돼 투명하고 공정하고 운영된다면 그 자체로 정당발전의 ‘순선환 구조’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정당을 위해서나 한국정치발전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일이 공천과정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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