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 미래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을 상 대하고 그들의 제국으로부터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모색할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가 가동돼야 할 때다.
1992년 7월 15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결정했다는 것을 통고했다. 김 주석의 표정은 침울했지만 반응은 짧았다. 김 주석은 “우리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할 것이며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후에 첸 부장은 “김 주석과 여러 번 만났지만 그가 이렇게 말을 적게 한 적은 처음 봤다”고 회고했다.
8월 23일이 되자 대만은 한국과 단교를 선언했다. 대만은 온통 반한 감정으로 들끓었고 한국을 배신자로 몰아세웠다. 8월 24일 오전 9시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한·중 수교문건이 체결됐다. 중국은 이 장면을 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한·중 간 새 역사의 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오는 24일이면 한·중 수교 20년을 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20년 전 수교가 이뤄졌을 때만 하더라도 한·중 관계가, 그리고 중국이 지금처럼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는 양국의 상호협력과 상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수교 이후 양국 간 경제교류 규모는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수교 당시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성년을 맞은 지금 도랑이 아닌 ‘넓은 강’이 생겼다.
중국 역시 지난 20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과거 20년과 따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제 중국이 없으면 우리가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 없이는 한국의 무역흑자는 어림없는 일이고 중국에서 번 돈으로 대일 무역적자를 메우는 판이다. 명동과 제주를 활보하는 중국 관광객의 두툼한 지갑에 군침을 삼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잔칫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물단지도 수두룩하다. 25%를 넘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양날의 칼이 되어 우리에게 족쇄가 될 수 있고,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최근 중국 공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 사건을 둘러싼 외교 갈등도 한 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수교 20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을 상대하고 그들의 제국으로부터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모색할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가 가동돼야 할 때다.
그렇지만 정부 고위직을 살펴보면 중국을 이해하는 전문가, 이른바 ‘중국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외교부는 대부분 ‘미국통’ 아니면 ‘일본통’ 일색이다. 그동안 줄곧 대중 전문가 그룹을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 결과물은 신통치 않다.
이런 점에서 올 12월 대선에선 중요한 선택기준이 하나 추가돼야 할 것이다. 바로 국제관계,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발전시킬 외교 비전과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후보를 골라내는 일이다. 스무 살을 잘 지냈으니 이제 뜻을 세울 때(而立)가 됐다. 전략적 사고와 안목을 갖춘 지도자와 함께 앞으로 양국이 먼 길을 함께 가는 진정한 친구 사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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