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靑巖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제철신화의 시원 포항을 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 신념 오늘날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 공장 주변은 푸른 잔디로 단장

건설사무소로 쓰던 롬멜하우스엔 고단했던 창업 1세대 삶 생생히…

[포항=신소연 기자] “이거,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가 되긴 되는 건가.”

1968년 11월, 포항제철소 부지를 방문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영일만의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모래바람으로 눈도 제대로 못뜨는 상황에서 제철소가 제대로 지어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당시 건설부 수장이었던 주원 장관도 포항제철소 부지를 중국의 황진만장(黃塵萬丈)을 빗대 ‘사진만장(沙塵萬丈)’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포철은 굴뚝공장이 모여 있는 산업시설답지 않게 매우 정돈된 모습이다. 고로와 열연, 압연 등 주요 공장들은 천연 색깔의 페인트로 화사하게 단장했으며, 공장 주변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푸른 잔디로 바둑판처럼 정갈하다. 불과 44년 동안 이같이 ‘개벽(開闢)’을 한 것이다. 이 개벽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바로 포스코 탄생 공신인 고(故) 청암(靑巖) 박태준 명예회장이다.

다만 청암의 흔적은 포항에선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 흔한 동상이나 자필 비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포철 건설 당시 현장 건설사무소로 썼던 ‘포항사무소’에서 청암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다. 청암은 1968년, 현재 제1열연공장 가열로와 제1분괴공장 사이의 언덕에 2층 규모로 슬레이트 지붕의 목조건물을 지었다. 지금은 이 건물이 제2차 세계대전 ‘사막의 영웅’이었던 롬멜 장군의 야전군 지휘소와 닮아 ‘롬멜하우스’로 불린다. 포스코는 그간 이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다가 2003년 포스코 역사관을 준공하면서 건물을 통째로 역사관 안으로 들여왔다.

롬멜하우스 1층에는 학교 교실처럼 낡은 철제 책상이 4열 종대로 배열된 사무실과 2평 남짓한 숙직실이 있다. 특히 숙직실은 당시 포스코 1세대들의 땀이 배어 있던 곳이다. 낮 동안 모래바람과 고단하게 싸운 이들이 이곳에 피곤한 몸을 뉘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2층에 있는 상황실은 박 대통령이 포항에 들를 때마다 청암이 브리핑을 했던 장소다. 박 대통령은 포항 현장을 13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포철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다.

채경주 포스코 브랜드기획그룹 학예연구사는 “모 방송사에서 청암의 삶을 재조명하는 드라마 ‘강철왕’을 기획 중인데 당시 주변 환경과 비슷한 칠포 해수욕장 인근에 롬멜하우스를 재현한 건물을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암 역시 사택에 머물며 건설현장을 직접 챙겼다. 당시 청암이 거주하던 곳은 바로 포스코의 ‘제1호 사택’. 이곳은 1980년 이후 여러 차례 시설보수 및 증ㆍ개축으로 외형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2009년 청암의 창업정신을 알리려고 초기 건립 당시 형태로 다시 복원됐다.

1호 사택은 예상 외로 소박했다. 165㎡(49.7평)가 안 되는 1층 규모의 아담한 붉은 벽돌집이었다. 이곳에는 청암이 사용했던 침대나 소파 같은 가구는 물론, 청암이 집무를 보던 책상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청암의 청렴한 성품이 그대로 투영됐을까. 청암 역시 이 사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퇴임 이후에도 포항에 들를 때마다 이 집을 사용했다. 특히 작고 직전인 2011년 9월에도 부인인 장옥자 여사와 이곳에 머물렀다.

천세근 포스코 행정섭외그룹 부총괄은 “사택이 복원된 2009년 이후에도 청암께서 10차례나 방문해 주무시고 가셨다”며 “이곳에 오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첫 쇳물을 뿜어내며 청암에게 뜨거운 눈물을 선사했던 제1고로 역시 두 차례의 설비 보수만 했을 뿐, 준공 당시 시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73년 6월에 첫 화입을 한 1고로는 당시 연산 103t 규모로 준공됐다. 당초 12년 가동을 목표로 지어졌지만, 수명이 끝난 지금도 문제 없이 뜨거운 쇳물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 1고로는 포철 내 4개의 고로 중 쇳물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포철의 대표 고로’ 자리를 뺏긴 상태다. 포철에 외부 귀빈이 방문하면 1고로가 아니라 가장 최근에 지어진 4고로로 안내하고 있다는 게 포스코 측 설명이다. 하지만 ‘원조 고로’로서의 자부심은 쩌렁쩌렁하다.

정철호 포스코 제1고로 조업파트장은 “1고로는 창업 1세대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는 마음으로 명절 때 고향에 못 가고 밤낮으로 고생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며 “고로 공장 근무자들이 이곳에서 실력을 쌓아 2~4고로로 진출했기 때문에 포철의 대표 고로 자리는 4고로에 내줬지만 원조 고로로서 자부심은 뿌듯하다”고 했다.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되자’는 좌우명으로 포스코 창업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청암. 그가 일궈놓은 포스코는 이제 세계 일류 철강기업으로 우리 경제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포스코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쑥스러워했던 청암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그의 창업정신은 포스코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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