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설립 靑巖의 남달랐던 교육가 정신
6ㆍ25 참전용사, 기업인, 행정가, 정치인 등 청암을 일컫는 말은 다양하다. 하지만 정작 청암 자신은 ‘교육가’로 불리길 원했다. 청암은 작고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철의 사나이가 내 별명이지만 나 스스로는 교육혁명가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여름 햇살이 가득한 포스텍 캠퍼스에는 곳곳에 청암의 손길이 느껴진다.
청암이 포스텍에서 가장 애착을 가졌던 곳은 바로 무은재 도서관 앞 광장이다. 퇴임한 이후에도 1년에 한 번은 꼭 들를 정도로 애정이 컸다. 광장에는 6개의 좌대가 있는데, 이 중 4곳만 아인슈타인, 에디슨, 뉴턴, 맥스웰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흉상으로 전시돼 있고 나머지 2곳은 비어 있다.
2곳의 좌대를 비워둔 것은 청암의 뜻이었다. ‘미래의 한국 과학자’들을 위해 자리를 남겨둔 것이다. 청암은 포항공대에 몸담은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거나 그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이룩하면 그 좌대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청암은 포스텍에 들를 때면 항상 이 광장에 와 안타까운 손길로 빈 좌대를 쓸어보곤 했다.
청암이 떠난 지금, 이곳은 이 대학의 명소가 됐다. 빈 좌대에서 사진을 찍으면 성적이 오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생들로 북적인다. 특히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포스텍에는 청암의 유일한 동상<사진>이 있기도 하다. 교내 노벨 동산에 가면 코트 차림의 중절모를 쓴 청암의 전신상이 있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동상의 모습은 청암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 동상은 청암학술정보관 내 흉상과 함께 세계적인 조각가인 우웨이산(吳爲山ㆍ49) 중국조각원장이 맡았다. 그는 중국에서 출판된 ‘박태준 평전’을 읽고 청암의 인간적 매력에 끌려 자발적으로 동상 제작에 나섰다.
동상을 제작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청암 자신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다. 청암은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학교 측에 “박정희 대통령도 동상이 없는데 어찌 나 같은 사람의 동상을 만들겠나”라며 정색했다. 하지만 2011년 경북 구미에서 박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비로소 자신의 동상 건립을 학교 측에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동상 제막식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포스텍 관계자는 “제막식 이후 동상과 관련한 공식행사는 설립 이사장님의 추모식이었다”며 “오래 사시라고 만든 동상인데 동상을 세우자마자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