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산업부]현대 경영학의 구루인 톰 피터스는 미래를 경영하는 4가지 요건으로 리더십과 트랜드, 인재와 함께 디자인을 꼽았다. 디자인이 제품의 외관을 꾸미거나 예쁘게 포장하는 수준을 넘어 경영의 핵심 영역이 된 것이다. 소비의 패턴이 ‘기능적 소비’에서 ‘기호적 소비’로 전이되다 보니 디자인은 기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열쇠로 자리 잡게 됐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디자인’이라는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무한경쟁 시장에 나서고 있다.
▶디자인은 기업의 미래다=최근 기업들의 경영 행태를 ‘디자인 경영’이라고 말할 정도로 디자인이 경영 전반에 부각된 것은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고 나서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교류되자 기술 격차가 많은 부분에서 사라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기술보다는 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차별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기술 소니’의 전성기를 이끈 고(故) 오가 노리오 소니 명예회장도 “경쟁 제품들이 기술이나 성능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시장에서 제품을 구별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이후 ‘감성’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다양해진 것도 한 배경이다. 제대로 된 디자인은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영국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말처럼, 디자인은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위안이 된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기능 위주의 제품에 감성을 입히기 시작했고, 새 시장을 창출할 때도 디자인을 전략적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게 됐다.
▶혁신은 디자인으로부터 시작=기업들은 이런 ‘디자인의 시대’에 발맞춰 디자인을 기업 혁신의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내 완성차 브랜드인 기아자동차다. 지난 2005년 정의선 현대ㆍ기아차그룹 부회장이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디자인은 기아차의 핵심 가치가 됐다. 정 부회장은 당시 “기아차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며 디자인을 경영 전반에 내세웠다. 그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대규모의 디자인센터를 설립하는 등 디자인 개발에 전사적인 에너지를 쏟았다. 그 결과 기아차는 ‘호랑이 코’ 라디에이터로 대변되는 패밀리 룩(차량 디자인 통일)을 완성했고, K5 같은 베스트셀링 제품을 생산했으며 레드닷디자인어워드 등 국제적인 디자인 상을 휩쓸기도 했다.
▶디자이너는 제품 기획의 큰손=글로벌 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의 한 가운데 서있는 삼성은 일찍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았다. 삼성은 지난 1996년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후 강력한 디자인 혁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디자인 경영센터를 조직해 사내 디자인 인력만 1000여 명에 이른다. 또 주요 시장인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는 해외 디자인연구소를 설치해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를 마련하기도 했다.
삼성의 디자인 정책의 특징은 디자이너를 단순한 스타일리스트(Stylist)가 아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라이프 크리에이터(Life Creator)로서 그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심지어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해 기획 전반을 조정하기도 한다.
삼성은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지 10년째 되는 2006년에도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시작, 느슨해질지 모를 디자인경영 체제를 다잡았다. 그해 이탈리아 밀라노에 모인 삼성전자 주요계열사 CEO들은 ▷독창적인 유저 인터페이스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인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 4대 디자인 전략을 선포했다.
▶조직 운영에도 디자인이 영향=기아차나 삼성전자 등 유형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 뿐아니라 무형의 서비스를 취급하거나 B2B(기업 간 거래) 업체 등도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좋은 디자인이 조직원들에게 창조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믿음이 기업들에 확산됐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경쟁이 치열한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디자인 강화에 나서 네티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지난 8월 삼성디자인학교(SADI)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장 출신인 김우정씨를 신임 마케팅 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전문 디자이너를 마케팅 전반에 내세워 디자인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김 센터장 취임 후 NHN은 웹툰 디자이너들을 광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참여시켜 콘텐츠 제공자와 네이버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앱피소드’를 선보였다.
포스코는 철강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제철소 내 공장들의 외벽을 화려하게 단장했다. 포스코의 경영철학인 도전추구(파랑), 실행중시(빨강), 인간존중(노랑), 윤리준수(초록), 고객지향(주황) 등을 형상화 한 다섯가지 색을 공장 외벽에 칠해 제철소를 경쾌하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SK그룹은 지난 2005년부터 ‘행복 날개’로 명명한 CI(기업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SK를 상징하는 붉은색을 그대로 사용하되 행복, 따뜻함, 매력을 의미하는 주황색을 보조색으로 넣어 SK의 핵심가치인 고객행복을 CI로 표현한 것이다. 더욱 부드러워진 CI를 통해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고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의중의 표현이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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