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3회> 사랑을 위한 의식 21
예원희는 신문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속된 말로 그것은 작업용 멘트에 불과했다. 바람으로 전해 듣기에 남쪽나라에서는 신문기자가 상당히 대접 받는 직업이라기에 대충 얼버무려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아, 그렇군요. 신문기자…시군요.”
“신문기자질을 하니까 남쪽나라 재벌 왕자님께 대뜸 말을 걸지, 그렇지 않다면 똑바로 쳐다볼 수나 있었겠습니까?”
신문기자질이라는 말이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고, 말끝마다 무언가가 질질 흘러내리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지만… 그런 엘리트가 자길 알아봐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유호성은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방금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셨나요?”
“그럼요, 자본주의의 비생산적 산물이긴 하지만… 자동차 속도경기 방면에서는 꽤 유명한 선수 아닙니까? 그런데 공알 치기 대회장에 머물고 계시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말입니다…”
“선생께서는 속도경기 자동차들이 저렇게 쌩쌩 달리느라고 엉덩이에 불을 뿜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왕자님이라고 했다가 선생이라고 했다가…, 놀리는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상당히 미인이라는 점이었다. 하긴 유호성에겐 그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을 것이다. 신문기자면 어떻고 방송기자면 어떠랴.
“상당히 미인이시군요.”
이를 테면 유호성도 즉각 작업용 멘트를 날린 셈이었다. 그러나 예원희는 그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침 그 순간 두 사람 앞으로 각축을 벌이며 드리프트를 하는 랠리 카의 굉음이 요란하게 밀려온 까닭인지도 몰랐다.
“네?”
“무척 아름다운 분이시라고요.”
“아! 제가 상당히 곱게 생겼다고요?”
북한에서는 미인을 평할 때 곱다고 하는 것을 그는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은들 또한 어떠랴. 남녀 7세 이상이면 겉모습만으로도 저절로 끌리고 당겨진다는 것은 만천하의 진리 아닌가. 그걸… ‘남녀 7세 자동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난 지 불과 1~2분 사이에 이 정도로 진도가 나갔다면 그다음 과정은 이미 불을 보듯 뻔하겠지. 어느 새 유호성은 예원희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 상태였다.
“곱게 생겼는지 아닌지는 둘째 문제고요… 저는 어째서 왕자님이 자동차 속도경기 선수이면서 공알 치기 대회장에 머물고 계신지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말로 하자면 길지요.”
“말로 못하시면 몸으로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이런! 느닷없고 당돌한 예원희의 질문에 유호성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말을 못하면 몸으로?
“그게… 말하자면, 저 자동차 쇼는… 아직 정식으로 치러지는 경기가 아니고요, 앞으로 멋진 경기를 벌이겠다는 시범을 보이는 것뿐이거든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유호성은 손사래를 쳐가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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