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도망자’. 도망을 쳤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쫓는다.

그것이 도망자와 추적자의 관계다.

영화 소재로도 자주 사용되는 도망자. 대한민국에서는 흔히 각종 범죄에 연루된 후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전국을 떠도는 이들이 있다.

경찰은 추적자다. 끝까지 이들을 검거하겠다는 신념으로 경찰은 추적하고 또 추적한다.

이 도망자와 추적자의 스토리를 들여다 봤다.

▶도망자의 심리는…=도망자는 자수를 할까, 자살을 할까 고민한다. 그러나 이 중에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공소시효 만료를 노린다. 살인과 같은 중 범죄를 저지른 도망자들은 도주를 하며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경찰에 수배돼 전단이 뿌려지면 자살이나 자수할 생각을 한다”며 “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 시간은 잠시 뿐이며 자신의 은신처가 생각보다 안전하고, 안 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어떻게 하면 도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경우는 도피처를 미리 정하고 범죄를 하며,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견뎌보자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도망자들은 주로 자신의 고향에 숨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전혀 모르는 곳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는 것보다 알고 있는 곳으로 숨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도주자들이 연고지에서 검거될 확률이 큰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향으로 숨지는 않는다. 울산 자매 연쇄 살인사건의 피고인인 김홍일은 산으로 숨었다. 절로 들어가 도망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횡령 등에 연루된 경제사범들과 권력과 연계된 범죄자들은 해외로 내빼기도 한다.

▶섬에서 숨어지내거나 선원이 되기도= 도망자들은 섬 등 벽지로 숨어 들거나, 배를 타고 선원이 돼 해상을 떠돌기도 한다. 실제로 김홍일을 수사한 울산중부경찰서 관계자는 “김홍일이 섬으로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어 이에 대비해 연안을 추적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홍일은 산을 택했지만 해안벽지는 도망자들이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도피처다.

지난 4월16일 전남 완도의 한 아파트에서 내연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A(60) 씨. A 씨는 범행 직후 3km 떨어진 신지대교까지 걸어가 목선을 훔쳐탄 후 고향인 신지도로 출발한다. 경찰은 A 씨가 버리고간 목선을 발견한 뒤 신지도에 경찰 200여명을 배치하고 헬기까지 띄우며 추적에 나섰다. 신지도의 야산에 숨어든지 3일째, 물과 진달래꽃으로 허기를 채워나가던 A 씨는 신지대교 검문소에 제발로 걸어들어왔다.

A 씨가 경찰에 건넨 첫 마디. “배고프고 춥다”였다.

선원으로 위장해 배를 탄채 도피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군대가 가기 싫었던 B(34) 씨는 지난 2010년 병무청의 신고로 지명수배자가 됐다. B 씨가 택한 방법은 선원으로 해상을 떠도는 것이었다. B 씨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이복동생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선원으로 생활했다. 지난 6월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에서는 선원생황을 하며 공소시효 기간을 넘기려 한 C(34) 씨가 검거돼기도 했다. C 씨는 강릉과 제주도 등 전국을 떠돌며 절도 등을 벌인 후 어청도로 숨어들어 선원생활을 하며 도피행각을 벌였다.

▶재력가, 경제사범 등은 떵떵거리며 편안한 도피생활= 재력이 있거나 권력의 비호를 받는 도망자들은 해외나 집에서 한가로이 도피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신용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근무하던 D(58) 씨. 자신의 횡령사실을 상급기관에 알린데 앙심을 품고 여직원 E 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D 씨는 범행 다음날 홍콩으로 출국한다. 스리랑카를 거쳐 2000년 미국에 도착한 D 씨는 미국 롱아일랜드 해변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다 덜미가 잡힌다. 낚시가 금지된 지역으로 낚시를 했던 것. 낚시법 위반으로 경찰에 검거된 D 씨는 이후 살인 등의 혐의로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사실이 드러나 한국으로 송환됐다.

집에서 숨어지내는 경우도 있다.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74) 은 11년의 도피생활 중 10년을 자택에서 숨어지냈다. 이근안은 지난 1988년 12월 수배된 이후 서울 강남의 공무원 아파트 등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 90년 7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자택으로 잠입한 뒤 성경, 어학, 침술 등을 연구해 39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당시 이근안이 안락한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처원(71) 전 치안감의 비호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65억원 상당의 주식을 횡령하고 위조여권을 이용, 필리핀과 마카오를 오가며 도피행각을 벌인 사채업자 E(35) 씨가 검거돼기도 했다. E 씨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카오에 도착해 위조여권으로 입국을 시도하다 마카오 현지경찰에 체포돼 추방결정이 내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악성 사기범의 경우, 범죄를 저지를 당시 도망갈 구멍을 다 만들어 놓고 있다”며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경우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힘들게 수사해서 잡고 보면 타인명의의 외제차, 타인명의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경우가 꽤 된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