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2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저 푸른 초원 위에~ 쿵쿵짝짝 쿵쿵짝짝,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쿵쿵짝짝 쿵쿵짝짝,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이게 뭔고 하니, 아마 2030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40대 이상 아저씨, 아줌마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대중가요의 한 토막이다. 원로가수 남진의 노래인데 그 다음 절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인생 사이클이 명쾌하게 드러나는 노래일 것이다.

‘봄이면 씨앗 뿌려~ 쿵쿵띠리 쿵쿵따라, 여름이면 꽃이 피고~ 쿵쿵띠리 쿵쿵따라,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이렇게 이어지는 노래가사는 얼핏 유치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추해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곤 하는데… 특히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에게 오히려 그 가사는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곤 했다. 어째서냐고? 그야 두 말하면 잔소리, 사랑에 빠지면 유치하리만큼 단순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유호성의 심정이 꼭 그와 같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예원희와 한 평생 살 수만 있다면… 봄에는 씨앗 뿌리고, 가을이면 추수해서 어영부영 하며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은 남진의 노래가사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유호성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주기만을… 예원희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예원희는 자기가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져 미인계를 펼치는 중이었다. 다시 반복해서 설명하자면 그녀가 이미 순정을 바친 남자는 권도일이었다.

“나는 어떡하든 유호성을 꼬여내어서 그를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드라이버로 참가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그 놈이 중국 내륙의 고비사막을 통과할 때에… 그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야만 합니다.”

권도일은, 평양호텔 객실의 침대 위에서 질펀한 상열지사를 끝낸 뒤에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이상, 우리가 한 지붕 밑에 살며 백년해로 할 수는 없지 않갔습네까?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갔지요. 하지만 저는 권도일 씨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결심했답네다. 그러니 도일 씨… 내가 일떠서서 당신의 거사를 돕갔시오. 기다리시라우요.’

그녀는 이렇게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당연히 예원희의 속셈을 알아챌 리 없는 유호성은 옷을 벗은 채 유혹하는 그녀의 꼬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골프를 포기하라고 하자 대번에 골프채를 꺾어버렸고, 남조선 드라이버로서의 명예를 떨쳐달라고 부탁하자 두 말 없이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출전을 자청했던 것이다.

그런 사연을 가슴 속에 품은 채 귀국한 유호성은 철망 속에 갇혀 있다 풀려난 맹수처럼 순식간에 야성을 되찾아 갔다. 이미 북한 땅에 머무는 동안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출전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귀국 즉시 그는 거성의 레이싱 팀에 합류했다.

거성의 재벌2세는 제풀에 굴러 들어온 호박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러나 재벌2세보다 더욱 가슴 뜨겁게 그를 맞아들인 사람은 권도일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제 죽을 자리로 찾아들어왔군.’

권도일은 이렇게 생각하며 유호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인지 유호성의 손마디는 곧고 부드러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학수고대하던 베스트 드라이버를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두 분이 팀을 이루어 출전한다면 천하무적일 것입니다. 우리 거성의 그레이스 팀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방금 거성 레이싱 팀의 이름이 ‘그레이스’라고 하셨나요? 그렇다면 혹시 몬테카를로 랠리 때처럼 1974년 산 고물 치타를 타게 되는 겁니까?”

유호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되물었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냐는 투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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