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가진 기량만큼 성적을 내고, 성적을 낸 만큼 돈을 받는다. 연봉값을 못했을 땐 냉정하게 내쳐지는 소모품이기도 하다. 감독과 선수, 구단과 선수의 관계는 ‘사제지간’ 혹은 ‘친정’이라는 단어로 치장되기도 하고, 실제 그런 관계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즈니스 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도 돈과 계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을 흔치않게 목격할 수 있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지난 26일 파주 NFC에서 지도자대상 강습회에서 지난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과정에 대해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홍 감독은 절체절명의 경기였던 영국과의 8강전에서 지동원을 선발투입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지동원은 소속팀 선덜랜드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린 상태였다. 교체출전이 대부분이었고, 벤치를 지키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이런 선수를 큰 경기에서 기용하기는 쉽지 않다. 경기감각이 떨어진 것을 우려하는 것도 있지만, 선수 본인도 자신감이 떨어져있고, 뭔가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에 무리를 하거나 실수를 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지동원 선발’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홍 감독이 일본 벨마레에서 뛸 당시 동료 선수들이 좀처럼 볼을 내주지 않았고, 홍 감독은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6개월 가량이 흐른 뒤, 한일 정기전이 열렸고 홍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고 회고했다. 그러자 지동원도 같은 심정일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고. 지동원에게 영국생활의 고충을 듣고난 뒤 선발로 기용할테니 마음껏 뛰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다. 결국 지동원은 천금같은 선제골을 터뜨리며 한국 4강진출의 밑거름이 됐다. 지동원은 “내 인생 최고의 골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동원에게 그럴만한 재능은 이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그런 빅게임에 자신을 믿고 선발로 내보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 자신의 아픔까지 어루만져주며 소중한 기회를 주었으니 지동원에게 그 경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는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은 종목의 스포츠선수들 중 출중한 기량을 가졌음에도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나, 불미스러운 일로 옷을 벗는 선수들을 많이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지 못하는 지도자나 팀을 만나 제대로 기량을 펼쳐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이들도 많다. 흔히 ‘궁합이 안맞는다’거나, ‘감독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게 되지만, 결국은 진정한 신뢰가 구축되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100번 우승한 감독도 필요하겠지만, 한명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줄 수 있는 지도자도 필요하다.
김성진 기자/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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