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기자는 2015년 시작과 동시에 ‘정진영의 읽는 노래(이하 ‘읽는 노래’)’라는 타이틀로 매주 인상적인 가사를 가진 신곡을 소개해왔습니다. 연재 후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반년이 지났더군요. 그사이 스무 곡 남짓한 곡들의 가사가 기사로 다뤄졌습니다. 돌아보니 상반기를 결산해도 충분할 만큼의 기사가 쌓여있더군요. 이번 주에는 그간 기사로 소개된 곡들의 가사를 비롯해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인상적이었던 곡의 가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 안치환 ‘바람의 영혼’= “해지고 뜨고 꽃피고 지고/계절이 또 지나가고/사랑이 가고 이별도 가고/슬픔마저 가 버려/끝이 없어라 언제나 나는/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까/가끔은 나도 삶이 궁금해/나의 신께 묻곤 하지/무슨 이유로 무엇을 찾아/살아가고 있는지/흔들리는 내 영혼이여/이 공허한 질문과 대답에 지쳐버려”
기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가사는 안치환 정규 11집 ‘50’의 수록곡 ‘바람의 영혼’이었습니다. 사실 이 곡은 기자가 ‘읽는 노래’로 다루지 못한 곡입니다. 기사로 다루기엔 감흥의 크기가 너무 큰 곡이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한다면 핑계일까요? 직장암 투병과 함께 지천명의 나이를 맞은 안치환이 병상에서 빚어낸 음악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철학적 가사와 깊은 시선. 삶의 밑바닥을 몽땅 긁어모아 바깥으로 쏟아내는 듯한 목소리. 이 곡은 가요가 가벼운 소비재에서 벗어나 예술로 승화할 수 있음을 다시금 증명하는 소중한 결과물입니다. 안치환의 선 굵은 목소리에 실린 삶을 통찰하는 가사 앞에선 수사가 무의미한 전율이 입니다.
“이 하루를 애써 버티는 나를/그럼에도 미소 짓는 나를/어제와 같은/오늘을 살아가는 나를/아무도 박수쳐주지 않지만/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거친 바다/인생의 강물을 건너는 난/머물지 않는 바람의 영혼/난 멈추지 않는 바람의 영혼”
▶ 하비누아주 ‘청춘’= “기억이 나지 않아/내 의지와 다르게/모든 게 멈춰 버린 것 같아/앞이 보이지 않고/땅은 내 머리를 향해 오네/이 목적 없는 청춘엔 냉기가 흐르지/도망치는 청춘은 눈물도 차가워”
청춘들은 사회초년병으로 신분이 바뀔 무렵에 중대한 갈림길과 마주칩니다. 취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꿈을 좇을 것인지 말이죠. 과거엔 취업은 따분하지만 안정된 길이고, 꿈을 좇는 일은 행복하지만 불안한 길이라고 여겨졌었죠. 그러나 평생 직장이 사라진 요즘 세상엔 그런 인식도 변화했습니다. 다소 절망적으로 말이죠.
취업은 이제 과거만큼 쉽지 않을뿐더러 안정적인 자리도 많지 않습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꿈을 좇는 일은 정말 꿈같은 일이 돼 버렸죠. 일부 기성세대들은 과거의 경험에 비춰 “요즘 청춘들의 열정이 부족하다”고 나무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일의 밥을 보장해주지 않는 ‘열정페이’와 불안한 일자리 앞에서 청춘들이 처음과 같은 열정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2015년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지상 최대 과제는 생존입니다. 한때 낭만의 언어였던 청춘은 이제 우울의 표상입니다. 밴드 하비누아주의 신곡 ‘청춘’은 이 같은 청춘들의 현실을 서정적으로, 그러나 아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달리던 커다랗고 짙은 나의 슬픔을”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 거야/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정말 아무것도 아니지/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구나”
옥상달빛은 이른바 ‘힐링 음악’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그동안 옥상달빛이 들려준 곡들이 ‘힐링 음악’이었는지조차도 기자는 의문입니다. 옥상달빛의 대표곡 ‘하드코어 인생아’를 살펴볼까요?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죽지 못해 사는 오늘/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동화 같은 멜로디에 속지 마세요.
이 곡의 가사를 쓴 박세진은 “독립해 살기 시작한 이후 2년 마다 집을 옮기는 세입자 신세인데 주거비용이 저축하는 금액보다 너무 빨리 올라가는 현실에 화가 났다”며 “문득 70년대에 발표된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니 소설 담긴 이야기와 지금의 현실이 물가 외엔 달라진 것이 없는 걸 보고 우린 정말 희한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힐링’으로 ‘힐링’이 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을 옥상달빛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상달빛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희한한 세상에서 사느라 힘들지? 실은 나도 지겹고 힘들어”라고.
이 곡은 안치환의 ‘바람의 영혼’과 더불어 기자가 ‘읽는 노래’로 다루지 못한 곡입니다. 기사로 가볍게 다루기에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란 변명을 하나 보태고 뒤늦게 결산으로 추가합니다.
“울지 마 어쩔 수 없다고/울지 마 네가/잠자코 있었으니까/눈 감고 귀 막고/입을 닫고 살면/그럼 지금보다/행복할 거래/그래도 세상 한 가운데/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눈 뜨고 잘 듣고/목소릴 내보면/그럼 지금보다/나아지겠지/그리고는 천천히/살아가는 거지”
▶ 사이 ‘총파업지지가’= “조용히 곶감이 익어가던 일요일/동지는 어딜 갔나 간 데가 없고/애꿎은 유리문만 박살이 났네/어느 멋진 동짓날 아침/답답했던 노루가 뛰쳐나갔고 /세수도 안 했는데 모니터 앞에서/최루액으로 모욕을 당해버렸지/때수건보다 기분이 더러워졌네”
청춘들이 ‘열정페이’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장 내일의 밥이 공포로 다가오는데 청춘들이 집단적인 대응을 생각해볼 겨를은 없을 것 같더군요.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니 연대감을 가지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요.
온갖 상상 속에서 기자는 문득 오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청춘들이 이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절망을 진심으로 공유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청춘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열정페이’조차 포기하고 손에서 일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청춘들이 절망으로 연대해 맥박이 멈춰 버린 사회. 기자의 상상 속에서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지더군요. ‘유기농펑크포크’ 뮤지션 사이의 새 앨범 ‘화전민의 노래’의 수록곡 ‘총파업지지가’는 청춘들을 포함한 민심의 임계점으로 치달은 분노를 경쾌한 연주로 노래합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아무래도 우린 너무 만만했나봐/잠자코 있으니까 병신 같나봐/이렇게 멋진 하루를 기억할거야/이제는 소리 치고 노래할 거야/사람들을 밟고 어디에 오를 수 있나/백성들을 속이고 무엇을 얻으려 하나/상처받은 사람들 호랑이가 될 텐데/깨어난 사람들 사자가 될 텐데/총파업으로 다 같이 힘을 모으자/더 이상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각자의 자리에서 파업을 하자/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자”
▶ 노사연 ‘바램’=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잃을 것이 별로 없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다들 무서울 것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모두들 그 시절 자신이 꽤 멋져 보였던 순간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격은 자연스럽게 둥글둥글해집니다. 아니 둥글둥글해져야만 합니다. 가족을 비롯해 지켜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니까요.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내가 흔들리는 순간, 동시에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나를 잊은 채 사는 바쁜 삶이 공허해지는 순간, 무엇이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수 있을까요? 노사연이 7년 만에 발표한 신곡 ‘바램’은 진솔한 가사로 “사랑한다”는 애정 어린 한 마디의 큰 힘을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사랑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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