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 성장과 추락…빛바랜 ‘샐러리맨 신화’가 남긴 것들
어느날 거대 기업이 사라졌다. 재계 13위 자산 24조원의 거대 기업이 1년만에 산산 조각 나 버렸다. 마치 산더미 같던 파도가 물거품으로 사라진 것 처럼.
2001년 5월1일, 대한민국 경제계에 나타난 STX그룹은 지난 13년 간 성난 파도와 같았다. 하늘로 치솟는 파도의 힘과 위세는 놀라웠다. 적극적인 인수ㆍ합병(M&A)으로 외형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조선 해양을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의 모델은 재계 순위 13위까지 고속 성장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을 그리워 하던 일반 대중들에게 STX의 성장은 ‘짜릿한’ 볼거리였다. 창업 2, 3세가 총수를 맡는 시대에 STX그룹은 거의 유일한 ‘창업 1세대 기업’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사람들은 거침없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보며 훈훈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STX는 반신반의하는 외부의 시선 속에서도 조선 강국 한국의 유일한 처녀림이던 크루즈선 제조업체까지 인수하며 신화를 이어갔다. 강 전 회장의 신속 과감한 M&A 전략은 언제나 성공의 무지개를 띄우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 치솟던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며 물거품이 되었다. 유동성 위기에 몰려 STX팬오션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였고 글로벌 조선사 4위까지 올라섰던 STX조선해양은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는 처지다. 조선업계를 엄습한 불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잘 나갈때 대비하지 못한 탓이 컸다.
성장과 함께 안정과 내실도 튼튼히 다져야 했는데 바닥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해양강국을 자신하던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로 그간 숨겨왔던 부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침몰한 현실과 겹쳐진다.
계열사는 조각조각 찢어져 새 주인을 만나거나 청산될 위기에 놓였고 강덕수 전 회장도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던 강 전 회장은 지난 8일 횡령 및 배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되며 쓸쓸한 말로를 맞는 모습이다. 월드베스트의 꿈을 키워오던 STX그룹의 13년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위기를 딛고 회생에 성공하길 바라지만 선박용기자재, 조선, 해운, 에너지 부문을 모두 갖춘 조선해양기업의 위용을 갖춘 STX의 모습을 다시 보긴 쉽지 않을 듯 하다.
STX는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됐지만 이 회사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녹록치 않다. 대기업집단 중심의 기업 구조에서 1세대 오너 기업이 명맥을 이어가기란 진정 어려운 일인지, 샐러리맨의 신화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또 제2, 제3의 ‘기업가 강덕수’를 길러내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지난 해 말, STX그룹에 8년 간 몸담았다가 회사를 떠난 한 직원의 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초라하게 됐지만 우리 회사에는 다른 재벌 그룹에는 없던 ‘파이팅’이 있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무일푼으로 그룹을 이룬 회장은 신입사원에게는 희망이었고, 맨 바닥에서 하나씩 쌓아 올라가는 성취감은 늘 짜릿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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