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기업 엔비디아·AMD마저 규제 강화
중국 수출용 H20 통제 8조원 손실 예상
삼성·SK가 입을 영향은 제한적 전망
“AI 붐 꺾일라” 빅테크 투자축소 우려

![인공지능(AI) 칩 선두업체인 엔비디아는 최근 자사 H20 칩을 중국에 수출할 때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전했다. 위쪽은 미중 무역갈등 사이에 낀 엔비디아 이미지. 아래쪽은 반도체 생산공정 현장 모습 [로이터·헤럴드 DB]](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17/news-p.v1.20250309.851a64ed1ae34bb28fd5682f7e65bf6b_P1.jpg)
“엔비디아도, AMD도 예외는 없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중국과의 관세 전쟁 불똥이 자국 AI(인공지능)·반도체 기업에까지 튀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규제 완화’를 기대했던 엔비디아와 AMD마저 큰 손실을 면치 못하게 된 상황입니다. 미중 간 통상 갈등이 지속되면 반도체 장비 업체들도 실적 악화가 불가피합니다.
전세계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리스크’로 인한 시장 충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약 2년 넘게 이어진 AI 붐의 기세가 꺾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부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가 단기 해프닝에 그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中 견제에 엔비디아 ‘700조’ 투자도 무용=15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자사 H20 칩을 중국에 수출할 때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라는 통지도 받았다고 전했죠.
H20은 그간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할 수 있었던 가장 최신 사양의 칩이었습니다. 2022년 바이든 전 행정부 때부터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산 최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이 제한되자, 엔비디아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H20을 만들어 중국용으로 수출해왔습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와 AI 기업들은 올 1분기에만 160억 달러, 약 23조원어치 이상의 H20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H20 수출 규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 정부가 해당 규제를 강화하면서 H20 칩의 수출길도 막히게 됐고, 엔비디아로선 큰 손실과 함께 향후 매출 감소도 불가피해졌습니다.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1분기(2∼4월)에만 약 55억달러(7조8567억원)의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재고, 구매 약정, 관련 충당금 등에 따른 비용입니다. 연간 손실은 140억~180억달러(약 20조~2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미국 정부는 수출 규제 강화의 이유로 H20이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되거나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들었습니다. H20은 앞서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선보인 AI 모델 학습에 쓰인 칩 중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그간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와 미국 내 천문학적 투자를 약속했다는 이유로 미중 무역 전쟁 여파를 일부 피해갈 수 있을 거라고 관측해왔습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수출 규제 강화 바로 전날 향후 4년간 미국에 최대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를 생산하겠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700조원의 투자 약속도 트럼프 정부가 벌이고 있는 ‘중국 반도체 굴기 꺾기’에서 예외가 될 순 없었나 봅니다.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꼽히는 AMD도 수출 규제 강화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AI 칩인 MI308의 중국 수출길이 제한되면서, 8억달러(1조1312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공교롭게도 엔비디아 수장인 젠슨 황 CEO와 AMD 수장인 리사 수 CEO 모두 대만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네요.
▶AI붐 기세 꺾일까…빅테크 ‘전전긍긍’=트럼프 정부의 인정사정 없는 정책에 주가 시장도 폭락했습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전날보다 6.87% 내린 104.49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AMD 주가도 7.35% 하락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 퀄컴도 각각 2.43%, 3.57%, 2.06% 하락했습니다. 반도체 관련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4.10% 떨어졌습니다.
시가총액 1위 애플 주가는 3.89% 내린 194.27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주가는 4.94% 내려 주요 대형 기술주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습니다. 시총 2위 마이크로소프트는 3.66%, 메타플랫폼은 3.68% 하락했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아마존 주가도 각각 2%와 2.93% 내렸습니다.
엔비디아나 AMD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납품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날 주가가 3% 이상 떨어지며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번 조치로 양사가 입을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H20에 들어가는 HBM은 상대적으로 구형 제품인 HBM3입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가속기인 블랙웰 기반 칩에 탑재되는 HBM3E를 주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최근 H20 칩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8단 HBM3E이 일부 탑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물량이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H20에 들어가는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했지만 최근에는 중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트럼프 정부의 연이은 반도체 압박에 AI 및 반도체 업체들의 고심은 커지고 있습니다. 애플, MS, 구글 등 AI데이터센터 등 인프라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해오던 빅테크 기업들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AI 시장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들에 가장 먼저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3대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를 비롯한 업계 경영진이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 관세로 인한 부담 문제를 논의한 결과 대형 업체의 경우 기업당 연간 3억5000만 달러(약 5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생기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데 따른 매출 손실과 제조장비 부품의 대체 공급업체를 찾는 비용 등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복잡한 관세 관련 정책을 준수하기 위한 추가 인력 채용도 비용 상승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비용 상승은 AI 인프라 구축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빅테크 기업의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MS는 최근 영국 런던 인근 데이터센터 부지 임대 협상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일리노이주, 위스콘신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부지 협상을 중단하거나 설설립 계획을 연기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가 오히려 중국의 AI 칩 자립을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시장조사업체 무어 인사이트앤스트래티지의 창립자 패트릭 무어헤드는 “이번 조치는 엔비디아의 핵심 시장 접근을 차단한다”며 “중국 기업들은 곧바로 화웨이로 전환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습니다.
화웨이는 이미 엔비디아의 H100 대체제 역할을 할 어센드 910C의 양산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일각에선 중국 업체들이 심자외선 노광장비(DUV)로 7나노 공정 기술 양산까지 성공한 것도 모자라, 극자외선 노광장비(EUV)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SMIC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5.5%로 2위인 삼성전자와 2.6% 포인트 격차밖에 나지 않습니다. 메모리 시장에서도 CXMT의 점유율이 지난해 5%까지 상승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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