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조선 세조 10년(1464)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지를 들어 행차를 안내하는 충정을 보여 벼슬까지 받았던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도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상 이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2012년 8월 정이품송은 태풍 ‘볼라벤’의 강품을 견디지 못한채 밑동 옆 가지 1개가 부러지는 수난을 당했다. 지름 18㎝, 길이 4.5m가량의 큰 가지였다.

높이 145m, 둘레 477m인 정이품송은 1993년 강풍에 동북쪽 가지를, 2004년에는 때아닌 3월 폭설에 서쪽으로 뻗은 직경 15㎝, 길이 3.7m짜리 본 가지 1개와 직경 5㎝, 길이 50~60㎝ 크기의 잔가지 2개를 잃었다. 2007년, 2010년에도 서너개씩 부러져 나갔다.

▶600년을 잘 버티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최근 20년간 숱한 수난을 겪은 정이품송
▶600년을 잘 버티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최근 20년간 숱한 수난을 겪은 정이품송

600년을 버티던 정이품송이 최근 10~20년 사이 잇달아 수난을 당한 것이다.

고을 어귀, 고찰 입구에 어김없이 우뚝 서있는 노거수(老巨樹)는 지역과 지역민의 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최근 20년 사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서 노거수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

▶보호할 고목, ‘노거수’ 보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옆에는 실시간 기상관측 시설이 지키고 있다.
▶보호할 고목, ‘노거수’ 보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옆에는 실시간 기상관측 시설이 지키고 있다.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로 인해 전국적으로 25만 그루의 수목이 넘어지거나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2012년에는 예년(3.1개)보다 많은 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는데 그 중 볼라벤은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52m의 전에 없던 초강력 파워로 많은 문화재에 상처를 주었다.

국립 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 조사결과 2000년 이후 발생한 18건의 천연기념물 노거수 피해 중 14건의 피해가 태풍으로 인한 피해였으며 낙뢰로 인한 피해가 2건, 폭설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각각 1건이다.

천연기념물 제 290호인 충북 괴산 삼송리 소나무는 볼라벤으로 인해 뿌리채 넘어졌고, 이듬해 고사(枯死) 판정을 받고는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되고 말았다.

충남 서천 신송리의 곰솔과 전남 익산시 신작리 곰솔 역시 낙뢰 피해를 입어 유명을 달리했고, 명예로웠던 천연기념물 훈장을 내려놓아야 했다.

나무 어르신들이 전에 없던 현대인의 환경파괴에 갑작스럽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문화재연구소가 서울대와 함께 전국의 전문가들을 모아 노거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지지대를 할지 말지, 어떻게 할지, 위험성은 어떻게 감지하는지 등에 대한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는 31일 오후 2시 경복궁 남서쪽 경내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리게 될 ‘천연기념물 노거수 보호시설 설치 기준 마련 공청회’에서는 노거수 보호대책 뿐 만 아니라,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 역시 전해질 것 같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미 수목 지지대, 쇠조임 등의 보호시설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위해, 2014년부터 천연기념물 노거수 보호시설 안정성ㆍ적정성 조사 연구사업을 수행중이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번 공청회를 통해 노거수 보호시설 설치 사업의 문제점을 명확히 하고 재해 발생 이전 예방적 보호대책을 제시하는 ‘천연기념물 노거수 보호시설 설치 기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