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 겪은 1994년과 2016년 여름 ‘데자뷔’

-남북관계, 대형참사, 스포츠이벤트 등 비슷한 사건사고 많아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1994년 7월 24일 정오 서울 최고기온이 38.4도까지 올라갔다.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가장 높았다. 전남은 39.4도를 기록했고, 대부분 지방이 37도를 웃돌았다. 당시 언론은 ‘살인적인 더위’에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고 묘사한다. 그해 폭염 기준인 33도를 넘는 날은 29일이나 지속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폭염 발생일수는 18일이다. 주말까지 폭염이 계속될 예정이어서 올해 폭염 발생일 수는 20일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8월 평균 기온은 29.7도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다. 6~8월 역대 가장 무더웠던 1994년과 비교되는 이유다.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추돌사고.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추돌사고.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면 인명 사고가 많아진다. 1994년 전국에서 열사병 등 폭염이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만 3384명이나 됐다. 이는 태풍, 홍수 등 모든 종류의 자연재해를 통틀어 역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례로 기록된다. 지독한 더위로 노약자와 심혈관계 질환자 등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쓰러진데 따른 것이다.

올해는 이달 15일 기준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16명으로 집계됐다. 1994년 집계방식과 달라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온열질환자 현황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가장 많다. 온열질환 환자는 1800여명으로 연일 사상 최대 수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전국적으로 펄펄 끓었던 1994년과 2016년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예전에 보았거나 겪었던 것같은 ‘데자뷔(dejavu) 현상’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1994년 뜨거운 여름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시작했다. 그해 7월8일 새벽 2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9일 12시 평양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당시 군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고, 북한 내부 갈등으로 도발의 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온 국민은 무더위와 함께 불안한 남북관계를 걱정하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여름 내내 최악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는 온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사드 배치 문제로 양측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남북관계가 김대중 대통령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 사고가 국민들을 짜증나게 한 점도 똑같다.

1994년 8월10일 11시 24분 제주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철제 울타리를 들이받아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승객들은 160명 전부 탈출에 성공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기체에 불이나 모두 타버리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다음날인 11일엔 경남 밀양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정면충돌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터졌다. 승객 등 4명이 숨지고 210여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였다. 기관사의 졸음운전으로 정지신호를 무시한 게 사고 원인이라는 당시 철도청측의 해명이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올 여름엔 유달리 고속도로 대형 참사가 많았다. 7월 17일 오후 5시45분 강원도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봉평터널 입구에서는 관광버스에 의한 5중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이 숨졌으며 16명이 다쳤다. 버스 운전자는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31일 부산 해운대에선 7종 추돌사고가 있었다. 운전자는 1차 접촉사고를 내고 도주하면서 시속 100㎞ 이상 속력으로 질주했다. 잇따라 차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3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치는 참사로 이어졌다.

올 해는 현직 검사장으로는 최초로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이나, 홍만표ㆍ최유정 변호사의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롯데그룹ㆍ대우조선해양의 비자금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1994년 8월 안병화 전 한전사장이 원자력발전소 공사와 관련, 대우그룹, 동아그룹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우울하게 했던 것과 비슷하다.

큰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해인 것도 같다. 올 여름엔 지난 6일 시작된 리우올림픽으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올림픽 메달 소식에 잠시 더위를 잊는다.

1994년 6월17일부터 7월17일까지는 미국에선 제15회 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한국은 스페인과 2대2, 볼리비아와는 0대0 무승부 경기를 하고, 독일에는 3대2로 아깝게 패했다. 16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쳐 전 국민이 환호했다. 당시 2골을 기록한 홍명보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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