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생경한 사자성어를 자랑스러운 듯 사용하는 경우를 본다. 요즈음은 정치인의 SNS에도 종종 등장한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공허한 표현들이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시쳇말로 우리 정치문화를 표현하는 한글 사자성어(?) 하나 알려주고 싶다. ‘내로남불’. 짐작하셨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치가 한 사회의 문화에 직결되기에 우리 사회의 문화도 내로남불의 모습에 익숙하다. 곧 시행될 이른바 김영란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봐도 그렇다. 이를테면 식사와 선물 그리고 경조사비 상한액으로 제안된 각 ‘3-5-10만원’을 ‘5-10-10’만원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제1야당 수뇌부가 내놓기도 했다.

그 논거는 13년 전에 정한 공무원 지침에 따라 만든 액수라 현실성이 없으며, 음식점과 소상공인, 농축수산업에 큰 피해를 끼친다는 점을 든다. 경조사비 10만원도 문제다. 대부분 10만원 이상 하는 경조화환 때문에 화훼농가가 큰 타격을 받는단다. 그러면 선물과 접대의 문화와 경제는 무슨 상관일까.

20세기 초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선물의 경제학에 대해 흥미있는 해석을 내놨다. 원시 부족에서 선물은 경제적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서양 근대 자본주의의 세계관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선물 교환을 통해 경제적 이익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증대하고 권력과 지위를 강화하는데, 이것은 되갚을 의무라는 윤리적 요구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즉 선물도 자본주의의 상품처럼 암묵적으로 대가를 요구하지만 그 대가가 금전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물과 자본주의 상품은 목적의 극대화에선 동일하다. 선물이 사회적 관계의 극대화에 목적이 있다면 상품의 교환은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에 있다. 만약 선물에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의 의미마저 주어진다면 그때부터 문제다. 선물이 뇌물이나 강제 공물(貢物)이 되기 때문이다.

모스는 선물의 경제가 근대 자본주의 이전 도덕률 경제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인정했지만, 뇌물의 경제는 서양 주류 자본주의가 원칙으로 내세우는 합리성과 자유시장의 경제 원리를 무너뜨리는 자본주의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본주의 원칙이 무너지는 사회는 선물의 경제가 뇌물의 경제로 존재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맥락을 파악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자영업과 농축수산업의 대변자일까. 자영업과 소상공, 농축수산업이 접대와 경조비, 선물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지…. 그럼 이제부터라도 그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 바로 잡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의원들이 자신들은 선출직이라는 미명 하에 김영란법의 예외 집단으로 남으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집단은 불법일 수 있지만 자신들의 활동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내로남불이다.

선물의 경제와 비슷한 예가 정부나 지차제에서 주는 지원금의 경우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은 증여경제학(grants economics)에서 지원금과 선물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그에 대한 답례를 어떤 형태든 요구하는 맥락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추진한 이른바 ‘청년수당’과 정부의 ‘취업수당’이라는 지원금 논란도 여기에 해당한다. 둘 다 가능한 지원금이다. 다만 정부의 안이 선물에 대한 답례가 기관에 돌아가는데 서울시의 안은 시장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문제다. 시장이 대선주자만 아니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것 없고 아마 정부도 트집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두 기관 다 공적인 돈을 지원해준 답례를 독차지하겠다는 속셈이 있으니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역시 내로남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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