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승소, 치료 지속은 별개

병원 퇴원 요청 후 금액 청구 논란

法, 계속 입원 치료 필요 ‘불인정’

손해배상금에 ‘추가 치료비’ 포함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식물 인간이 된 환자에 대한 소송 결과와는 별개로 추가 치료에 대해 미납한 진료비는 병원에 지급해야 한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사진은 입원실 환자의 모습.
[헤럴드 DB]
식물 인간이 된 환자에 대한 소송 결과와는 별개로 추가 치료에 대해 미납한 진료비는 병원에 지급해야 한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사진은 입원실 환자의 모습. [헤럴드 DB]

도무지 퇴원할 수 없었다. 그러면 마치 아버지를 영영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던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보라매병원)에서의 시간은 A씨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만 남았다.

시간은 지난 2005년 11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라매병원에 입원한 A씨는 양 측 뇌의 다발성 경색, 고혈압성 미세혈관병증, 척추동맥 협착, 동맥류 등 소견을 받았다. 이에 다음 달인 12월 22일, 뇌수술(개두술 및 동맥류 결찰술)이 진행됐다.

불안 징조는 수술 직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인 2006년 2월 6일, 일반병실로 전실해 치료를 받던 A씨에게 우측 전두엽 출혈, 우측 측뇌실 출혈, 정중선 변이, 양측 전두엽 뇌경색 등이 발생했다. 출혈과 부종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A씨는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렀다.

A씨 가족은 도저히 병원을 떠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보라매병원 의료과실에 따른 인정(약 8000만원 및 지연손해금 지급, 치료비+간병비·일부 승소·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80270호)도 받은 터였다. 실제로 보라매병원도 약 1억6200만원을 지급했었다.

A씨 가족에게는 보라매병원의 과실에 따른 치료가 당연해 보였다. 의료과실에 따른 치료가 이어지고 있었으니 별도로 진료비를 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씨 가족에게 의료소송 결과와 이로 인한 손해배상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치료 지속’은 별도였다. 보라매병원은 A씨에게 입원 치료가 불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여러 차례 퇴원을 요청했다. A씨 가족은 끈질기게 거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소장’이 날아들었다. A씨 가족은 소송에 대응해야만 했다.

‘11평’ 병실 점유를 둘러싼 ‘공방’

11평(37.09m²) 남짓 병실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됐다. 원고인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은 A씨가 장기간 상태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들어 보존적 치료 외에는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를 근거로 퇴원을 요청했으나, A씨 가족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대병원은 A씨 입원 기간인 2005년 11월 22일부터 2013년 2월 4일까지 발생한 진료비 중 미납 금액인 약 124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쉽게 말해 보라매병원은 A씨가 요양병원 입원 치료 혹은 가택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니 퇴원해 달라 요청한 것이다. 또 진료비 미지급에 따라 진료 계약 해지를 주장한 셈이다.

A씨 가족 생각은 달랐다. A씨 가족은 서울대병원이 제기한 진료비 채권(병원 측이 받을 수 있는 진료비 권리)은 의료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맞섰다.

구체적으로 A씨 가족은 보라매병원 의료과실로 인해 A씨가 식물인간이 됐고, 보존적 치료가 아닌 집중적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라고 역설했다. 특히 의료법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 “입원 계약 해지…진료비 납부”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정문경)은 ‘민법 제689조 제1항’을 들어 서울대병원이 입원 약정을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또 A씨 가족이 이전 소송과는 별개로 보라매병원에 미납한 진료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선 법원은 보라매병원의 주장대로 A씨 상태가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과실에 대한 소송기록, 보라매병원 내 A씨 의무기록, 의사 소견서 등을 종합한 결과였다.

구체적으로 이전 의료과실을 인정한 소송에서 A씨 신체 감정촉탁 결과, ▷A씨가 식물인간 상태로 큰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기능 악화와 합병증 방지를 위한 물리 및 약물치료 등 보존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간호비 등 인정된 비용이 A씨 증상 현상 유지 및 악화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원고(서울대병원)와 피고 A씨 사이의 입원 약정은 2012년 2월 7월경부터 계속된 원고 측 담당 의사의 퇴원 지시 및 요청에 따라 이미 적법하게 해지됐다”며 “적어도 해당 사건 입원 약정을 해지하는 의사표시가 담긴 소장 부본이 피고 A에게 송달된 2013년 6월 14일에는 적법하게 해지됐기에, 피고 A씨와 가족은 병실에서 퇴거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라매병원 측 과실이 소송에서 일부 인정됐다하더라도, 이와 별개로 이후 치료비 ‘약 1240만원(미납분)’ 및 ‘지연손해금’ 등에 대해서는 A씨 가족의 지급 의무가 있다고 봤다. 보라매병원의 의료과실로 인해 발생한 진료비 채권이 무효라는 A씨 가족의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법원은 세부적으로 ▷이전 소송에서 보라매병원 책임 비율이 40%로 제한됐다는 점 ▷병원 측 과실에 따른 상계로 60%에 해당하는 진료비만 인정됐다는 점 ▷보라매병원이 A씨 가족에게 손해배상 원리금을 모두 지급했다는 점 등을 들어 해당 건에서 청구된 진료비가 이전 소송의 결과로 상계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재우 기자


k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