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까지 떨어진 폐지값에 매달 10만원도 못버는 경우 많아

-재활용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 하지만, 생활수준은 최저 수준

-“폐지 노인들의 생활 보장할 수 있는 근본 지원책 마련돼야”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서울시 성동구에서 폐지를 줍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손모(79ㆍ여) 씨는 최근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손 씨는 얼마전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행하던 자동차에 스친 정도였지만 고령의 손 씨는 도로에 넘어지면서 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지금은 뼈가 붙은 상태지만 일은 그만뒀다.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손 씨는 “차라리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며 “힘들게 일해봐야 병원비가 더 나와 손해”라고 했다. 손 씨의 리어카는 몇달째 집 앞에 버려져 쓰레기통 신세가 됐다.

손 씨와 같이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꾸리는 노인 인구는 2016년 현재 175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골목 구석구석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역할로 자원 순환에 일조하고 있지만, 작업 환경은 위험하고 보상은 부실한 상항이다. 일부에서는 폐지 노인들을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사업에 참여시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재활용 사업에 큰 기여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재활용 사업에 큰 기여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실제로 폐지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모아 버는 돈은 기초생활비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환경공단이 집계한 지난 8월 수도권 폐지 거래 가격은 킬로그램(㎏) 당 100원이다. 지난해 2월 폐지 값이 119원을 기록한 이래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하루 평균 폐지를 20㎏ 정도 모아도 값으로는 2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재활용품 유통단계가 복잡해 실제 폐지 노인들의 손에는 절반인 1000원 정도가 남는다. 실제로 고물상에서 고시한 폐지 매입 가격은 60원대에 형성돼 있다.

폐지 가격이 내려가면서 가뜩이나 영세한 폐지노인들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서 폐지 수집을 하는 김모(72) 씨는 폐지 수집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이 10만원 안팎이다. 그마저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김 씨는 폐지 수집으로 번 액수만큼 수급액이 줄어 실제로는 거의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폐지 수집을 계속하고 있지만,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있다”며 “경쟁은 심해지고 생활수준은 점점 떨어져 그만둘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어려운 상황과 달리 폐지노인들은 재활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찾아가 폐지와 재활용품을 거둬가면서 구청이나 시청이 소비하는 재활용 비용을 줄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서울시 구청 관계자는 “재활용도 그냥 버리면 처리비용이 많이 드는데, 폐지 노인들이 수거 해가면 그만큼 비용 절약이 된다”며 “이 때문에 지원금 등 폐지 노인에 대한 지원책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난 4월 서울연구원도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이란 보고서에서 “폐지 노인 덕분에 좁은 골목까지 방치된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수거되고 있다”며 “자원 순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폐지 노인을 제도권으로 포섭하고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사회적기업에서는 폐지노인들을 재활용 사업에 참여시키며 폐지 노인들의 생계를 돕고 있다. 재활용품을 이용해 생활 소품을 만드는 한 공방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폐지 노인 구직 광고를 냈다. 공방에서 앉아 재활용품을 가공하는 업무를 맡기는 대신 최저 시급 이상을 지급해 경쟁률이 10대1을 넘기도 했다. 공방 대표인 이연지(32ㆍ여) 씨는 “경쟁률이 높아 어르신 모두를 모실 수 없어 안타까웠다”며 “모든 어르신을 재취업시킬 수 없는 만큼, 폐지 노인의 생활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절실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폐지 노인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면 재활용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복잡한 유통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현재 재활용 유통 단계는 서너단계로 나뉘어 있다”며 “심지어 폐지 압축과 분류도 다른 단계로 이뤄져 수수료가 발생하는 등 비효율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통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일차적으로 폐지 노인부터 생활고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재활용업계 전체가 위기”라며 “재활용 정책을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5월 자원순환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폐지 수집 노인 등 영세 재활용 업계의 수집 환경 및 시설 개선에 예산을 편성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세부 시행령 등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철규 노년시민연대 간사는 “세금으로 내는 폐기물처분 분담금과 지자체 예산을 폐지 노인 지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시행은 아직 요원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폐지 노인들의 실태 파악부터 이뤄져야 세부 시행령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