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투신으로 일군 민족기업 역사
활명수·후시딘·판콜로 국민브랜드 각인
지난해 순화동 창업지에 신사옥 준공
5년간 매출 70%↑, 헬스케어 외연 확장
메디쎄이·중선파마 인수 성장동력 구축
베트남 유통, K-뷰티케어 글로벌 개척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1936년 8월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 선수 최초로 올림픽을 제패한 역사적인 순간, 두 명의 메달리스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에 단 일장기 때문이었다.
조선중앙일보는 8월 13일(한국시간) 선수들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운 채 메달 소식을 보도했다.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자체 휴간에 들어간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에 이른다. 이 보도보다 앞선 8월 11일, 두 선수의 수상을 축하하는 광고가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반도남아의 의기충천, 손기정·남승룡 양 선수 우승 축하’, ‘건강한 체력, 견인불발(堅忍不拔·굳게 참아 흔들리지 않는다)하는 내구력의 근원은 오직 건전한 위장에서 배태된다’는 글귀와 함께 실린 활명수 광고였다.
광고를 게재한 동화약품은 당시 은포 민강 사장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사망하고 경영상의 위기가 닥쳤던 시기였다. 독립운동가 사장에 대한 일제의 감시가 서슬 퍼런 시절이었고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는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동화’라는 사명을 따온 주역의 글귀,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시화연풍 국태민안(時和年豊 國泰民安·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는 뜻대로였다.
서울 중구 순화동 5번지는 대한민국의 격랑이 소용돌이쳤던 곳이다. 조선 숙종의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탄생한 궁터였고,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의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 연통부’가 운영된 항일운동의 심장부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서소문 차동’,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화천정 5’, 현재는 ‘서소문로9길 20’으로 주소 명칭이 바뀌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온 동화약품은 한국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다.
지난해 7월 15일 동화약품은 ‘빌딩1897’ 신사옥을 이 자리에 준공했다. 사옥명은 창립연도인 1897년을 기념해 명명됐다. 지하 5층, 지상 16층, 연면적 1만5821㎡(4785평) 규모의 건물 1층 ‘동화 1897 라운지’에 들어서면 ‘동화약방 본포 입구’라는 글귀가 새겨진 표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897년 선전관이었던 노천 민병호가 궁중 비방에 양약의 편리함을 더해 만든 ‘활명수’를 내놓은 동화약방 입구에 있던 실제 표석이다.
한쪽에는 ‘동화약방 우물이 있던 자리’가 보존돼 있다. 노천 민병호가 아들 민강과 함께 이 순화동 5번지에 동화약방을 열었을 때, 그 마당에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우물이 있었다. 바로 이 우물의 물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新藥) ‘활명수(活命水)’가 탄생했다.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 제약회사로 공식 인정받은 동화약품은 이번 창업지 복귀를 통해 129년 민족기업의 역사를 이어나간다는 뜻을 새겼다.
활명수 탄생, 제약보국의 시작…93억병 판매
1897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 제약산업이 태동한 날이기도 하다. 민병호 창업자는 ‘좋은 약을 만들어 나라를 지킨다’는 제약보국(製藥報國)의 신념으로 동화약방 문을 열었다. 그는 누구나 의약품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 쓴 설명서를 함께 배포했다. 당시 한문과 함께 한글 설명도 담아 가정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 것은 시대를 앞서간 실천이었다.
창업 10여 년 만에 동화약방은 98여 종의 약품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1913년에는 75가지 주요 의약품의 효능과 용법을 정리한 ‘동화약방 용약보감’을 출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의약품 사용 설명서였다. 빌딩1897 전시관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된 ‘동화약방 처방철’은 1912년부터 1930년까지 기록된 것으로, 판매량이 높았던 품목 77종의 구성 약품과 분량, 제조법 등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활명수는 독립운동 자금이 됐다. 민강 사장은 1919년 서울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로서 임시정부의 방침을 독립운동 세력에 전파하고, 국내에서 수집된 군자금을 상하이 임시정부로 전달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이동 시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순화동 동화약품 창업지에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에 의해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세워져 ‘제약보국’을 상징하고 있다.
현재까지 활명수는 약 93억병이 판매됐다.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25바퀴 돌 수 있고, 전 세계 80억 인구가 한 병씩 마시고도 남는 양이다. 활명수 브랜드는 2025년 약 82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액상소화제 시장 1위 자리를 지켰다.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현재 동화약품은 일반의약품인 활명수·까스활명수·꼬마활명수·활명수-유를 비롯해 편의점용 까스활(活)·미인활(活), 편안활(다이소)·편안활 스트롱·소다활 등 총 9종의 활명수 브랜드 제품을 운영하고 있다.
근현대사와 함께…종목코드‘000020’ 위엄
동화의 상징인 ‘부채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등록상표다. 넓게 펼쳐진 부챗살은 한 점에서 만나므로 일심동체를 의미한다.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 즉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면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마음을 합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동화(同和)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민강 사장은 1931년 11월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동화약방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구원투수로 나선 인물은 민족 기업인으로 당대 존경받던 보당 윤창식(5대 사장)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조선 최초의 M&A로 부른다.
보당은 광복과 한국전쟁 등 굵직한 현대사의 고비를 넘기는 26년간 ‘활명수’ 브랜드를 지키고 키웠다. 엄혹한 시절에도 만주로 진출해 동화약방 안동지점을 설립했고, 1937년에는 ‘부채표 활명수’를 만주국에 특허 출원했다. 국내 브랜드의 첫 번째 공식 해외 진출이었다. 이때 발탁된 인물이 우리나라 제1호 여성 약사이자 최초의 여성 해외 지점장인 장금산이다. 숙명여고를 나와 조선약학교(현 서울대 약학대학)를 졸업한 장금산은 1938년 안동 지점장 겸 관리약사로 부임해 1945년까지 근무했다.
광복 이후에도 동화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73년에는 국내 최초 희귀약품센터를 순화동 본사에 개설했다. 7대 사장인 가송 윤광열 명예회장의 의지였다. 파킨슨병·나병·백혈병 치료제, 중금속 및 농약 해독제 등을 구비했던 이 센터는 1970년대 말 정부기관이 업무를 맡을 때까지 운영됐다. 윤광열 명예회장은 우리사주조합 결성, 국내 최초 생산직 전 사원 월급제 시행, 사회공헌사업 확대에 이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며 회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동화약품은 1976년 3월 24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종목코드 000020번으로,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종목 중 가장 빠르다.
5년간 70% 성장…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도약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화약품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21년 2930억원에서 2025년 4964억원으로 5년간 69% 성장했다. 특히 2024년에는 전년 대비 29% 급증한 4649억원을 기록했고, 2025년에는 역대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2022년 299억원 고점 이후 2024년 134억원으로 감소세다. 중선파마 인수, 신사옥 건립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따른 비용 증가가 반영된 결과로,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 국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화약품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오랜 헤리티지를 현재의 시장 환경에 맞게 재해석하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활명수·판콜·후시딘·잇치 등 기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서도 2026년에는 국내 외용제 최초 겨드랑이 다한증 전문의약품 ‘에크락겔’을 출시해 전문의약품 분야로 경쟁력을 확장했다. 안티에이징·트러블·모공 케어 등 뷰티 케어 라인과 인지 기능 강화 건강기능식품 MgLAB으로 헬스케어 라인업도 넓히고 있다. 동화는 K-헬스·뷰티의 가치를 글로벌 무대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동화약품의 미래 성장동력은 제약 산업을 넘어선다. 2020년 척추 임플란트 분야 메디쎄이를 인수하며 의료기기 시장에 진출했고, 2023년에는 베트남 약국 체인 ‘중선파마’를 인수해 동남아 유통망을 직접 장악하는 전략을 택했다. 2025년에는 베트남에서 약국과 편의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매장 1호점을 열었다. 활명수는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위한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으로 식수와 위생 교육 지원 기금도 마련하고 있다. 2008년 설립된 ‘가송재단’은 윤광열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 학술지원·장학사업·여성 및 예술 분야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좋은 약만 만들어라”…두 번째 100년 도약
빌딩1897 전시관 벽면에는 역대 경영자들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윤창식 5대 사장의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 동화는 동화식구 전체의 것이니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어라”는 유훈과, 윤광열 명예회장의 “인간이 개발한 약품으로 한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라는 말이 나란히 적혀 있다. 129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정신이다.
윤인호 동화약품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제약사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새 사업 분야인 K-뷰티와 베트남 리테일 스토어, 생활건강,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가치를 창출해 나갈 계획”이라며 “동화약품만의 차별화된 R&D 역량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결합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헬스케어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과감히 혁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897년 순화동의 작은 한옥 약방에서 솟아오른 우물물 한 모금이 오늘날 129년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 우물은 이제 ‘빌딩1897’이라는 이름의 16층 건물 아래 흰색 삼각뿔 조형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화약품이 세상을 향해 불어 보내는 좋은 바람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최은지 기자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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