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K-팝 아이돌에서 제작자로 변신

대기업 따라잡기 거부한 김재중 승부수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저를 아시나요?”

2세대 K-팝 그룹 동방신기 출신. 2003년 데뷔한 이후 ‘맨땅에 헤딩’하듯 일본 시장을 개척했고, K-팝의 영토를 동아시아로 확장한 주역이다. 그룹 동방신기 출신이자 가수, 배우로 활동하는 김재중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 많은 직업을 지우고, 중소 기획사 인코드 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2일 서울 마포구 큐브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뮤콘(MUCON) 2026’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 김재중 CSO는 K-팝 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짚으며, 중소 K-팝 기획사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가진 독자적 생존 전략과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화두에 올렸다.

“미국 진출? 그 말부터 틀렸어요.”

K-팝의 세계 진출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스타는 신인 그룹 제작자가 돼 K-팝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대기업 방식 따라하는 것

“대기업의 방식을 무턱대고 따라 하면 열화판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K-팝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김재중 CSO는 새로운 해외 진출 공식을 제시했다. 그가 가장 경계한 것은 대형기획사 성공 방식의 답습이었다. 그는 “중소 기획사가 해외에 진출할 때 하는 가장 위험한 생각이 ‘대형 기획사가 하는 것을 적은 예산으로 해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자본 집약적 산업이 된 K-팝을 이끄는 것은 언제나 이 판의 대기업이었다. 대형기획사는 자본과 인력, 글로벌 유통망, 플랫폼 협상력, 현지 네트워크를 갖고 K-팝 확장에 앞장서 왔다. 김재중은 중소 기획사가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출발선부터 불리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구도 자체를 ‘대기업과 독립 제작사’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김재중이 꼽는 중소 기획사의 최대 무기는 ‘민첩성’이다. 그는 “대중과 팬덤의 반응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콘셉트를 바꾸는 ‘태세 전환’이 우리의 생존력”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중이 고안한 글로벌 전략은 기존 K-팝의 성공 공식을 뒤집는다. 기존 아이돌 제작의 공식은 대동소이하다. 국내에서 아티스트를 만들고, 국내 팬덤을 키운 뒤 성공 가능성이 확인되면 일본·미국·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으로 확장한 것이 전통적 방식이다.

김재중은 그러나 “어느 시장에서 누구에게 사랑받을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그 팬들이 왜 이 아티스트를 선택할지를 설계한 뒤 멤버와 음악, 비주얼, 캐릭터, 콘텐츠, 플랫폼, 현지 파트너,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제시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를 글로벌로 확장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글로벌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중소 기획사 대표의 해외 시장 공략은 작은 단위로 세분화됐다. 그는 “중소기업이 세계 전체를 상대하기엔 국가 단위는 너무 크다”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시장을 찾고 그곳의 팬을 이해해 그들이 우리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국가보다는 각각의 도시와 조건을 먼저 분석한다.

“미국에서 팬이 5000명인 도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곳부터 가야 할 이유는 없어요. 다른 도시에 팬이 1500명 밖에 없더라도 경쟁 공연이 적고 팬들의 구매력이 높으며, 공연장 환경과 물류비와 항공료 부담이 낮다면 그곳이 오히려 좋은 시장일 수 있죠.”

온라인의 환각에 속아서도 안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온라인과 SNS 반응이 뜨거운 시장 역시 무조건 좋은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항공료와 배송비, 환율, 현지 구매력, 티켓 가격, 공연 인프라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지도가 높은 시장과 사업성이 높은 시장이 동일하진 않기 때문”이다. 김재중이 제시한 글로벌 디깅(Digging·세분화해 깊이 파고드는 시장 탐색’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미국에 간다’가 목표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이길 수 있는 도시를 찾는 것이 목표다.

현재 인코드에서 제작한 두 팀의 신인 그룹 역시 이러한 전략 위에서 태어났다. 지난 4월 데뷔한 5인조 보이그룹 키빗업(KEYVITUP)은 미주 시장을 겨냥한 반면 7월 데뷔한 6인조 다국적 보이그룹 베이온(VAYONN)은 아시아 시장에 맞춘다.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두 그룹은 활동 지역만 다른 것이 아니다. 팬을 확보하고 돈을 버는 구조 자체를 다르게 설계한다. 김재중은 “미주와 아시아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고 했다. 미주에선 아티스트의 개성과 신규 팬 유입이 중요하고 스트리밍과 브랜드 협업, 투어의 비중이 크지만 아시아에선 “팬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반복적인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앨범과 상품(MD·Merchandise), 팬미팅 등 팬덤 기반 소비도 중요한 요소다.

아시아 역시 하나의 시장으로 묶을 수 없다. 일본은 장기적인 팬 관계와 높은 팬당 소비가 특징이고, 중화권은 현지 플랫폼과 콘텐츠 유통 방식, 규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젊은 인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확산력이 강하고 K-팝 친화성이 높지만 국가별 구매력 차이가 크다. “글로벌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기에는 시장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김재중이 각기 다른 전략을 세우는 이유다.

김재중은 그러나 “두 팀을 통해 가설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데이터가 틀렸다고 말할 때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전환력이 중소기획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실패하고 도전할 권리 만들고 ‘데이터 연대’ 이뤄져야”

K-팝은 명실상부 팬덤 산업이다. 김재중이 가장 강조한 것도 ‘팬’이다. 하지만 그는 팬을 소비자로 보지 않는다.

김재중은 “팬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미디어, 마케터이면서 커뮤니티”라고 강조했다. 회사가 돈을 들여 바이럴(홍보 활동)을 만드는 것보다 팬들이 음악과 브랜드를 소비한 뒤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가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강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 음악을 듣고 우리 브랜드를 소비해 주는 분들이 그걸 더 멋지고 예쁘게 만들어서 우리 존재를 모르는 시장과 사람들에게 널리 확산해주는 파장이 더 효과적”이라며 “팬과 팬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이 일어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잘 만들어진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반응해 자기 자신을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그때부터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 팬은 좋아하는 스타를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구매와 재구매로 이어진다. 김재중은 이 흐름을 ‘관심→반응→팬이라는 정체성→콘텐츠 제작→구매→재구매→팬 한 명의 장기 지속 가치(LTV·Life Time Value)’로 설명했다.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여기서 LTV는 한 사람이 앨범을 얼마나 많이 사는지를 뜻하지 않는다. 그 팬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고, 얼마나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또 얼마나 많은 새로운 팬을 데려오는지를 포함하는개념이다. 팬덤의 규모만 따질 것이 아니라 “팬덤 안에서 어떤 행동이 일어나는지를 보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설립 4년차의 신생 기획사 인코드를 이끌며 김재중이 설계한 해외 진출 방식은 세 단계로 나타난다. ▶ 디지털 테스트와 발견(0~3개월)​의 시기, ▶ 오프라인 소규모 검증(4~6개월)​ 시기 ▶ 파트너십과 확장(7~9개월 또는 이후 확장 단계) 시기의 3단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숏폼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면서 현지 크리에이터와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어느 도시와 국가에서 반응이 나오는지를 확인한 뒤, 2~3개 도시에서 300~1000명 규모의 쇼케이스를 연다. 이후 검증된 도시와 국가, 플랫폼에 자본을 집중해 실행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김재중은 “마지막 단계가 정말 회사가 사활을 걸어야 할 때”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큰돈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유리한 건 조직이 단출해 아주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언제 돈을 넣고 언제 멈추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 빨리 시장을 학습하고, 가능성이 확인된 곳에 자본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2023년 설립한 엔터테인먼트사 인코드 설립자이자 최고전략책임자인 김재중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그러면서 “중소기업에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본을 계속 소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험을 통해 익혀온 노하우를 통해 얻은 통찰은 중소 기획사에 중요한 것은 ‘실패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지원금 확대’가 아닌 ‘데이터 연대’를 강조했다. 외딴섬처럼 떨어진 기획사들이 고립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중은 “A 기획사가 겪은 실패를 B기획사가 또 겪고 있다. 이제는 우리끼리 그 실패의 경험을 나눠야 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해외 에이전시 명단, 국가별 통관 규제, 마케팅 효율 같은 데이터를 클라우드처럼 모아 ‘공동의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콘텐츠 기업 전체가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정보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어 ‘실패 데이터’를 산업 전체의 자산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도 다르다. 김재중은 “정부는 성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싸게 실패하고 빨리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성공한 회사에 큰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산업 전체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실패의 원인을 기록하고, 다음 회사가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김재중은 강조했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뮤콘은 국내 뮤지션과 음악·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국내외 음악 산업 관계자를 연결하는 글로벌 음악 마켓이다. 기조연설을 맡은 김재중을 비롯해 국내외 제작자들이 나오는 콘퍼런스와 비즈 매칭, 쇼케이스 공연 등이 사흘에 걸쳐 열린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