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제 잇는 ‘커넥터 국가’
韓도 베트남 통해 미·중 연결
“특정 거점 의존도 낮출 필요”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서도 글로벌 교역이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는 배경에 베트남·인도·멕시코 등 ‘커넥터 국가(connector countries)’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 국가가 중국 중심의 생산망과 미국의 최종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중간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미·중 간 경제적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막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3일 정선영 한국은행 아태경제팀 팀장 등이 작성한 ‘지정학적 분절 속 글로벌 경제연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글로벌 교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 배경으로 ‘커넥터 국가(connector countries)’를 지목했다. 커넥터 국가란 미국의 최종 시장과 중국 중심 생산망 모두 긴밀하게 연결돼 미·중 양국의 경제적 연결을 이어주는 나라들을 말한다. 베트남·인도·멕시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가 생산·조달 네트워크의 중간 거점으로 기능하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단순 경유에서 더 나아가 현지 생산과 외국인직접투자(FDI)까지 확대되며 실제 생산 거점의 기능도 강화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커넥터 국가의 특징은 ‘이중 정렬’이다. UN총회 표결자료를 이용해 국가들의 대미·대중 관계를 분석한 결과 커넥터 국가들은 정치·안보 측면에선 미국에 가까워진 반면 경제·개발 측면에선 중국에 가까운 입장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중국 쪽으로 더 이동했다. 정치적 선택과 경제적 실리에 괴리가 생기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반면 한국·일본·호주는 정치·경제 양면에서 미·중 사이 중간 위치를 대체로 유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공급망에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은이 2016~2022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CIO(국제산업연관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베트남 수출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최종적으로 미국 수요와 연결되는 비중은 2016년 11.1%에서 2022년 18.5%로, 중국 수요와 연결되는 비중은 7.3%에서 13.9%로 높아졌다. 베트남 생산망을 통해 한국의 수출 부가가치가 미국·중국 양쪽 시장과 연결되는 폭이 모두 커진 것이다.
특히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업종에서 이 흐름이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미국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12.8%에서 21%로, 중국으로 연결되는 비중은 11.2%에서 19.4%로 뛰었다.
한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미국 시장으로 향하는 경로도 바뀌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연결되는 비중은 2016년 73.1%에서 2022년 72.4%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한국산 중간재가 제3국 생산기지를 거쳐 미국으로 가는 간접경로에서는 중국을 경유하는 비중이 10.7%에서 6.8%로 낮아진 반면, 베트남 등 아세안 5개국을 경유하는 비중은 4.9%에서 8.3%로 커졌다. 특히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업종에서는 아세안5 경유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며 2022년(18.6%)에는 중국 비중(17%)을 웃돌았다.
보고서는 “최근의 지정학적 분절에도 국가 간 경제적 연계가 단절되기보다 기존에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 경로가 재구성되면서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이 기존 아세안 생산망을 활용해 미·중 두 시장 모두와의 연결을 유지해 온 것은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생산·수출 경로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공급망 회복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커넥터 국가를 통한 완충 기능을 활용하는 동시에, 특정 생산거점이나 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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