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충격이냐, 구조적 변화냐”…가격 전략 갈피 못잡는 기업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한 사람이 디젤유를 주입하고 있다. [AFP]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한 사람이 디젤유를 주입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기업들이 고유가와 관세 갈등이 몰고 온 비용상승 앞에서 좀처럼 제품 가격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물가 지표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지만, 정작 기업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의 고비용 상황이 곧 지나갈 일시적 충격인지, 아니면 가격에 즉각 반영해야 할 구조적 변화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외부 요인에 따른 비용 충격이 곧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가격을 동결하고 있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고유가와 관세로 인한 비용 변동성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보고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전력 배전업체에 플라스틱 부품을 공급하는 앰빅스 매뉴팩처링의 공동대표 멜리사 플로리오는 최근 몇 달간 원유 가격 상승으로 원재료인 레진 가격이 계속 오르자 판단을 바꿨다. 한때 이란 전쟁에 따른 비용 상승을 일시적 충격으로 보고 가격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장기적인 비용 압박 요인이 됐다고 본 것이다.

앰빅스는 올여름 고압 송전선용 절연체 등 전 제품 가격을 10~21% 인상했다. 플로리오는 “더 이상 그 비용을 떠안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반면 펜실베이니아에서 3대째 농장을 운영하는 짐 바버는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우유를 판매하는 그는 건초 운송비가 약 15% 올랐지만 “중동 정세가 안정되면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며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연료비 상승은 일시적이라고 본다”며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앤 스원크 KPM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예전에는 충격이 간헐적이어서 버티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시적인 현상이 됐다”고 진단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식료품점 [AFP]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식료품점 [AFP]

그는 최근 업계 이코노미스트들과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할 경우 그동안 가격을 동결해온 기업들도 결국 가격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은 여전히 가격 인상에 신중하다. 인사관리업체 ADP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0년 말부터 2024년 말 사이 임금근로자의 3분의 1 이상이 실질 구매력 하락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는 지난달 막대한 유류비 부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1만개가 넘는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다고 밝혔다. 존 퍼너 최고경영자(CEO)는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동시에 “고객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가격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쟁과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태도를 바꾼 기업도 적지 않다. 수프 제조업체 캠벨은 지난 6월만 해도 높은 비용이 결국 진정될 것으로 내다보며 가격 조정을 “최후의 수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체 제품군의 절반 이상에 대해 가격 인상에 나섰다. 토드 컨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다른 방식으로 비용 절감을 시도했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를 전제로 경영 계획을 세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헬스테크 기업 데이터메즈AI의 제럴드 코미시옹 공동대표대행은 “곧 진정될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