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죽이기 위해 새 떼를 키우고 있다“(국제 동물보호단체 PETA)
커다란 구덩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죽은 동물들. 우리나라에서는 ‘꿩’이라고 불리는 새, 언뜻 보면 야생동물들에게 희생당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은 더 비참하다. 바로 사람이 사냥한 결과물. 그것도 고기 등 부산물을 얻기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죽인 모습이다.
심지어 이 꿩들은 ‘사냥’을 위해 키워졌다. 재미를 위해 태어나, 재미를 위해 죽는 인간의 ‘장난감’같은 삶을 산 셈이다.
오로지 사냥을 위해 동물들을 대량 사육하는 문화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심지어 그 규모도 적지 않다. 영국에서만 매년 최대 약 7000만마리의 새가 희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뿐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사슴, 멧돼지, 캥거루, 심지어 사자까지 많은 동물들이 ‘사냥’을 위해 키워지고 있다.
영국은 조직적인 ‘새 사냥’ 산업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나라다. 방식은 간단하다. 사람이 알을 부화시키고, 먹이를 주며 길러 사냥철 직전 자연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사냥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산탄총을 쏴 새들을 잡는다.
사냥객들은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다. 올해 영국 사냥업계가 공개한 ‘2026 게임 슈팅 센서스’에서는 몰이식 꿩 사냥 비용이 잡힌 새 한 마리당 평균 51.60파운드(한화 약 9만5000원), 붉은다리자고새는 51.87파운드(한화 약 9만6000원)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사냥량인 121마리를 기준으로 하면 한 팀이 하루 사냥에 지불하는 비용만 약 6240파운드(약 1150만원)에 달한다.
그 규모도 적지 않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한 해 방사되는 꿩은 약 3900만~5700만마리, 붉은다리자고새는 810만~1300만마리에 달한다. 각각의 최대치를 더하면 약 7000만마리에 달한다. 적어도 매년 수천만마리에 달하는 새가 사냥을 위해 별도로 생산되고 있다는 것.
최근 이같은 사냥 산업에 관심이 쏠린 건, 최근 동물보호단체들이 연달아 그 실상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영국 동물보호단체 ‘애니멀 에이드(Animal Aid)’는 사냥용 조류 농장을 약 20차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은 방문한 모든 시설에서 동물 학대나 방치 정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량으로 사냥용 새를 생산하고, 자연에 풀어놓은 뒤 사냥하는 구조를 지적했다.
같은 달 동물보호단체 ‘프로텍트 더 와일드(Protect the Wild)’ 또한 영국의 한 꿩 부화장에서 촬영한 잠입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갓 부화한 새끼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제품’처럼 취급되고 분류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물보호단체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며 영국 정부까지 움직였다. 지난 4일 영국 환경식품농무부는 사냥용 조류를 번식시키고 사냥하는 전 과정에 대한 공식 증거 수집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산업 전반에서 생물다양성 보존, 야생동물 보존 등 문제점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
특히 정부는 사냥을 위해 사육되는 조류가 식용 가금류와 동일한 동물복지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며, 현행 보호 체계가 충분한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규제 강화나 사냥 금지 등 정책 방향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가장 주요하게 지적되는 것은 사냥용 새가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만 희생되고 있다는 것. 통상 사냥한 꿩 등은 사냥객이 가져가 먹거나, 게임육 업체로 보내 식용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냥 산업이 성장하면서, 사냥으로 죽는 꿩에 비해 고기 수요가 부족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지난 2018년 부동산 자산 컨설팅 업체 세빌스(Savills)는 영국 566곳 수렵장 운영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수렵장의 46%는 사냥한 새를 게임육 업체에 돈을 받지 않고 넘겼고, 12%는 오히려 마리당 비용을 지급하면서 처리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또한 사냥철을 앞두고, 평소보다 많은 새가 방사돼, 고기 수요를 넘길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이에 사냥업계는 게임육 시장을 확대하고, 식용 유통 판로를 넓힌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 측은 소비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사냥용 새 사육 자체가 자연 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사육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냥을 위해 대규모 방사되는 꿩 등은 영국 토착종이 아니다. 이에 자연 방사 이후 생태계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이 야생조류에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죽일 동물을 따로 키우는 문화가 새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사슴과 엘크 등 몸집이 큰 포유류까지 별도로 사육해, 수렵장 안에서 사냥하도록 하는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멧돼지도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이른바 ‘캔드 헌팅(canned hunting)’으로 불리는 극단적 형태도 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미국에서 울타리로 둘러싸인 수렵장에 사육되거나, 사람에게 익숙해진 동물을 넣어두고 사냥객이 죽이도록 하는 시설이 운영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는 사슴 등 토착종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영양류 등 외래동물이 이용되기도 한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측도 미국의 캔드 헌팅에서 이용된 다양한 동물들이 사냥을 위해 별도로 번식되거나 동물 거래업자로부터 공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사자’가 대표적이다. 사육시설에서 태어나 길러진 사자를 제한된 공간에 넣고, 돈을 낸 사냥객이 사살하도록 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남아공 정부는 지난 2024년 상업적 목적의 사자 사육을 끝내고, 상업적 이용을 중단한다는 방향의 정책을 채택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이같은 사냥 방식이 허용돼 있다. 특히 과거 국내 수렵장에서는 사육한 꿩과 멧돼지 등을 수렵 대상으로 제공한 사례가 있다. 일부 지역에서 지난 2010년대까지 이같은 관광 수렵장이 공개적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감염병 우려가 커지며 개장하지 않고 있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는 사육·밀폐형 사냥을 대표적인 야생동물 학대 관행으로 꼽으며, 사람 손에서 길러진 동물을 울타리 안에 가둔 채 돈을 낸 사냥객에게 ‘쉬운 사냥감’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는 캔드 헌팅 산업에 대해 “오직 ‘스릴을 위한 사살’을 위해 동물을 번식시키고 판매하는 시설”이라며 “사육된 동물들은 야생 개체군 보전에도 사실상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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