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인, 사건처리 불만에 경찰관 고소

원하는 방향의 수사 아니라고 ‘법왜곡’ 규정

자신이 맡은 사건 관계인에게 고소당한 경찰관의 모습. [AI로 제작]
자신이 맡은 사건 관계인에게 고소당한 경찰관의 모습. [AI로 제작]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수도권의 한 일선 경찰서 수사관 A씨는 최근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의 피고소인으로부터 되레 고소당했다. 사건 관계인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피고소인이 된 것이다.

발단은 한 영세 제과업체에 반복적으로 제기된 민원이었다. 한 인물이 업체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며 여러 차례 보상을 요구하자, 업체 측은 업무방해 혐의로 그를 경찰에 고소했다. 가명을 사용한 피고소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A씨는 민원 과정에서 사용된 전화번호의 가입자 정보를 조회해 본명을 확인했다.

그러자 피고소인은 A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 자신의 본명을 확인한 수사 과정이 위법하다며 직권남용과 직무 유기, 개인정보보호법·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을 주장했다. 수사관에게는 “형사님도 고소당하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 사건 마음에 안 든다”며 담당 수사관에게 돌아온 고소장

수사관이 자신이 맡은 사건의 고소인·피고소인으로부터 역으로 고소당하는 일은 수사 일선에서 왕왕 발생한다. 대개 수사 결과나 진행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건 관계인이 수사관을 공격하는 식이다.

서울의 한 일선서 수사과장은 “당사자가 느끼는 불만과 실제 범죄 성립 여부는 다른 문제라 혐의가 인정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사기·횡령·배임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을 다루는 지능범죄수사팀이나 통합수사팀에서 이런 사례가 상대적으로 잦다는 게 현장 설명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민원실에서 민원인이 민원상담 창구를 이용하는 모습. [헤럴드경제 DB]
서울의 한 경찰서 민원실에서 민원인이 민원상담 창구를 이용하는 모습. [헤럴드경제 DB]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실제 부당한 수사를 당했다면 권리 행사를 막을 수 없지만 수사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고소하는 경우도 섞여 있어 경찰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사가 편파적이거나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건 관계인이 수사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시도경찰청 단위에서 개별 사건이 제대로 수사됐는지 등을 심의해 필요하면 재수사 등을 수사팀에 권고한다. 이 절차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담당 수사관을 겨냥해 직접 고소, 고발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선 ‘법왜곡죄’ 혐의가 수사관을 겨냥하는 새로운 명목이 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법왜곡죄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이 된 경찰은 3535명이다. 검사(727명), 법관(529명)보다 많다.

일선서 수사과장은 “법왜곡죄가 생기면서 해당 죄명으로 들어오는 고소가 조금 늘었다”며 “내용을 보면 과거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제기하던 주장과 비슷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불만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수사관이 고소당했다고 곧바로 기존 사건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고소만으로 담당자를 교체할 경우 이를 수사관 교체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직무 관련 고소가 접수되면 수사관도 자신의 수사 절차와 경위를 소명하거나 필요에 따라 조사를 받아야 한다.

한 일선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구체적인 혐의가 부족하면 각하될 수 있지만 다툴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경찰관도 조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부담은 사건 적체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선 수사관들의 애로사항을 더 키운다. 다음달 검찰의 수사사무를 폐지한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검찰에서 경찰로 넘겨지는 사건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수사에서 발을 빼려는 경찰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수사경과에서 해제된 경찰관은 1191명이다. 본인 희망에 따른 해제가 633명, 직권 해제가 558명이었다. 희망 해제 인원은 2023년 654명, 2024년 616명, 지난해 565명으로 최근 매년 500~6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한 일선 수사관은 “사건은 계속 쌓이는데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담당자를 다시 고소하고, 혐의가 없더라도 왜 그렇게 수사했는지 또 설명해야 한다”며 “민원이나 고소 부담 때문에 수사 부서를 떠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수사관을 상대로 한 고소를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위법·부당한 수사에 대한 사건 관계인의 권리구제 통로도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훈 교수는 “수사이의심사위원회 같은 내부 절차가 일종의 필터링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며 “근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조직이 사건 관계인과 수사관 사이에 한 차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jookapook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