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라이즈 덮친 13만 건 암표 시장
매크로 없어도 ‘웃돈’ 얹으면 덜미
굿즈에 티켓 끼워팔고 해외 도피
개정 공연법 시행에도 남겨진 ‘구멍’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최소 3~4배에서 최대 약 27배.
방탄소년단(BTS)의 11만원짜리 공연 티켓이 300만원에 팔리고, 16만5000원짜리 스트레이 키즈 콘서트 티켓도 200만원까지 치솟는다. 대학 졸업 후 별다른 직업 없이 암표 판매를 해온 30대 남성 A씨는 매크로 프로그램과 친인척 명의 계정을 동원해 무려 8967장의 표를 쓸어 담았다. 그가 챙긴 부당 매출만 24억 원. 이 돈으로 경기에 있는 아파트 1채와 상가 2채를 사들였다. 국세청 세무 조사를 피하려 버젓이 전자상거래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전형적인 ‘기업형 범죄’였다.
K-팝 시장의 폭발적 성장 이면에 기생해 온 암표 유통이 거대한 ‘지하 경제’로 진화한 가운데, 지난달부터 티켓 부정 판매에 최대 50배의 과징금을 물리는 개정 공연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법망을 우회하는 신종 수법과 제도적 빈틈이 여전해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올해만 13만 건…BTS 암표 거래 가장 많았다
18일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이하 음공협)에 따르면, 올해 1~8월 온라인상에서 포착된 암표 거래 게시물은 12만9528건에 달했다.
2024년 1만6451건, 2025년 12만312건 등 3년간 누적 집계 건수만 26만6291건에 이른다. 국내 대중음악 공연 티켓 판매액이 2024년 1조4537억 원에서 2025년 1조7326억 원으로 18.8% 급증하면서 암표 시장 역시 기형적으로 팽창했다.
암표가 유통되는 플랫폼의 무게중심도 이동했다. 지난해 암표 거래의 89.06%가 몰렸던 티켓베이는 올해 65.40%로 낮아진 반면, 단속망을 피해 엑스(X, 구 Twitter) 19.48%, 번개장터 11.32% 등으로 분산됐다.
특히 엑스(X)의 단일 계정 하나가 931건의 암표를 판매해 22억 원이 넘는 예상 매출을 올린 사례가 확인되는 등 비공개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한 음성화 경향이 짙어졌다.
공연별로는 방탄소년단(BTS)이 8912건으로 암표 거래 게시물이 가장 많았다. 그 뒤로 NCT 드림(게시물 건수 7774건), 데이식스(DAY6, 6577건), NCT 위시(5895건), 임영웅(5145건) 등이 뒤를 이었다.
티켓 정가 대비 프리미엄(Premium, 웃돈)이 가장 높게 형성된 가수는 라이즈(RIIZE)로 평균 47만3658원에 달했다. NCT 위시(43만4993원), NCT 드림(33만5351원), 엑소(EXO, 27만8611원) 등 탄탄한 코어 팬덤을 보유한 가수일수록 심각한 가격 왜곡을 겪었다.
매크로 없어도 ‘웃돈 판매’ 철퇴…다계정 암표상 “꼼짝마”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예매 과정에 개입하는 ‘매크로(Macro)’는 암표 시장이 기업형으로 진화하게 한 주범이다. 매크로를 통해 빠르게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인기 공연은 대부분은 1인당 구매 매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여러 계정을 통해 구매 제한을 우회하는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양원석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과 경감은 “인기가 많아서 매진되는 공연은 매크로를 이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며 “인기 공연은 매수 제한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를 뚫기 위해서는 타인 계정까지 활용하는 수법이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표상들의 예매 수법에 맞춰 수사 기법도 해당 방향으로 맞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구속된 30대 남성 A씨가 가족과 친척들의 계정을 총동원한 것도 이런 범죄 구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매크로가 예매의 ‘속도’를 높인다면, 다계정은 한 사람이 확보할 수 있는 ‘티켓 수’를 늘리는 데 씌인다.
개정 공연법은 처벌 요건이 대폭 확대됐다. 예전엔 협의의 매크로 사용만 처벌할 수 있어 예매처를 피해자로 한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우회 기소해야 했다. 하지만 개정법은 매크로(Macro)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정가보다 비싸게 티켓을 파는 행위’ 자체를 부정 판매로 규정해 처벌이 가능하게 했다.
황승흠 국민대 법과대학 학장은 “과거 법이 ‘나쁜 놈 처벌’에 머물렀다면, 개정법은 관객의 정당한 ‘문화 향유권’과 ‘공정한 시장 질서’를 지키는 쪽으로 법익이 완전히 전환됐다”고 짚었다. 권순재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사무관 역시 “암표상은 시장에 아무런 기여도 없이 과실만 남긴다”며 “목표는 단순 처벌 실적이 아니라 암표 자체를 시장에서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벌 기준도 명확해졌다. 매크로를 쓰면 ‘부정 구매죄’로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구입가를 초과해 판매하면 ‘부정 판매죄’가 적용돼 형사처벌과 함께 판매액의 최대 50배 과징금이 부과된다.
반면 웃돈을 주고 티켓을 산 일반 관객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법은 구매자를 제보자로 흡수하기 위해, 부정 판매자를 신고해 과징금이 확정되면 최대 50%를 ‘신고 포상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정가 이하의 양도는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기획사가 예매 약관(Terms of Service)에 ‘양도 금지’를 명시했다면 현장 입장 거부나 직권 취소 조치는 전적으로 유효하다.
‘댈티와 아옮’은 처벌 기준 모호해
‘댈티’(대리 티켓팅)와 ‘아옮’(아이디 옮기기)은 매크로나 다계정 암표상보다 문제가 더 복잡하다.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티켓을 예매하는 방식으로, 사실 K-팝은 물론 인기 뮤지컬과 연극 팬 사이에선 흔한 방식이다. 게다가 구매자 역시 시간을 절약하면서 돈을 더주고 ‘대리 구매’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
사실 대리 티켓팅은 경계는 복잡하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한 번 정도 티켓을 대신 예매해 주는 것과 수수료를 받고 ‘반복적으로’ 인기 공연 티켓을 확보해 고객에게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도 ‘대리 티켓팅’이라는 이름만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실제 거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단계에서 ‘대리 티켓팅은 모두 불법’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부정거래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쟁점은 누가 티켓을 구매했고, 어떤 방식으로 확보했으며, 누구에게 어떤 대가를 받고 넘겼는지, 반복적·영업적인 거래였는지 등이다.
황승흠 국민대 법과대학 학장은 “매크로 우회 입증이 어려운 ‘부정 구매’보다는, 수수료 명목의 대가를 받고 넘기는 행위의 실질을 따져 ‘부정 판매’로 포섭하는 방식이 법리상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아이디 옮기기’는 더 미묘하다. 예매자가 자신의 계정으로 티켓을 확보한 뒤 실제 관람자에게 계정이나 티켓을 넘기는 방식이다. 이 매크로 사용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불가능에 가깝다.
예매처가 약관으로 계정이나 티켓의 제3자 이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약관 위반과 공연법상 형사처벌은 별개의 문제다. 황 교수 역시 ‘예매 최초 판매자가 정한 방식이 아니면 형사처벌이 되야 하나’는 부분에는 실제 사례가 쌓여야 한다고 봤다. 고기호 회장은 “정상 양도는 보호하되, 반복·고가·우회 거래는 걸러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에서 아무리 암표상을 걸러내려 한다 해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는다. 해외 암표상의 존재 때문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암표상은 수사기관과 플랫폼의 협조를 통해 거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지만, 해외 암표상은 사실상 무법지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거주자나 외국인이 해외에서 부정구매·부정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속지주의에 따라 국내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연이 한국에서 열리느냐만이 아니라 구매·판매 행위가 어디에서 이뤄졌느냐는 것이다.
권순재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사무관은 “해외 플랫폼으로 암표 거래가 이동하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며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국내 플랫폼을 이용해 거래하는 경우는 해외 활동 판매자와 같은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암표 단속의 국경이 복잡해지는 이유다. 해외 플랫폼을 통한 거래 도피는 오는 12월 전자상거래법상 ‘해외 사업자 국내 대리인 제도’가 가동돼야 비로소 대응의 실마리가 풀릴 전망이다.
“굿즈 사면 티켓 드려요”…빈틈 찾는 암표상
법만 바뀐다고 암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매처는 ‘기술 전쟁’으로 암표상과 대치하고 있고, 정부와 수사기관은 전방위 단속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인 놀유니버스는 한 계정당 한 디바이스 접속, 본인인증, 비정상적인 클릭 패턴 탐지 등을 적용하고 있다. 인간이 누를 수 없는 ‘0.0001초 단위의 반복 클릭’ 등 비정상 트래픽을 탐지해 즉각 차단하며, 취소 티켓을 6시간 동안 무작위로 분산 오픈해 ‘아이디(ID) 옮기기’를 방어하고 있다. 동일 주소지로 30매 이상 배송을 요청할 경우 소명을 요구하는 사후 검증도 도입했다.
우명균 놀유니버스 콘서트사업팀 팀장은 “부정 예매를 막기 위한 기술 개발은 지속해서 하고 있다”며 “서버 비용이나 모니터링을 위한 인원, 콜센터, 개발 비용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게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을 강화한다고 해도 전 세계 부정 구매자들의 기술도 동시에 고도화되기 때문에 뚫고 뚫리는 창과 방패 같은 싸움”이라고 했다.
법망과 예매처의 대응이 촘촘하고 기민해질수록 암표상의 ‘지하 거래’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MD(굿즈)에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티켓을 함께 넘기는 등 신종 수법이 포착된 것이다. 1000원짜리 포토카드나 기프티콘을 50만 원에 팔면서 티켓(Ticket)을 사은품으로 끼워주는 ‘가장 거래’가 판치는 상황이다.
다만 개정법 시행 후 3주가량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실제 거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법이 규정한 거래 형태를 피해가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 허점도 적지 않다. 당초 추진됐던 ‘현장 본인 확인 의무화’는 법제처의 반대로 입법이 무산됐고, 소비자보호법상 환불 규정은 암표상의 안전판이 되고 있다. 우명균 팀장은 “티켓이 안 팔리면 공연 직전 취소 수수료 없이 표를 무르면 그만이라 암표상은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는다”며 “주류처럼 비공식 거래를 원천 금지하거나 티켓 취소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처벌을 넘어 기형적인 티켓(Ticket) 유통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기호 음공협 회장은 “소비자가 100만 원으로 10만 원짜리 공연 10편을 볼 기회를 암표상이 가로채 공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며 “일본식 예매 추첨제(Lottery)나 세분된 좌석 등급제 등 기획사 차원의 다각적인 예매 방식을 도입해 암표상의 자리를 없애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승흠 학장 역시 “암표 시장은 결국 좋은 자리를 원하는 관객의 강력한 욕망에서 출발한 블랙마켓”이라며 “명당 좌석을 경매제(Auction)로 전환해 가격을 양성화하거나, 1차 예매처가 정가 이하의 공식 2차 재판매(Resale) 창구를 운영해 통제권을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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