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사실 안 부모가 피의자에 직접 경고
대화 삭제·휴대전화 폐기하며 수사 막혀
경찰, 전담팀 재정비하고 예방 교육 확대
#. 지난 4월 서울 중랑경찰서가 수사한 아동 성착취 사건에서 20대 남성 A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만 13세 아이와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실제 만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피해 아동의 신체를 접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모는 남성의 연락처를 확보한 뒤 “성인이 미성년자를 만나면 안 된다. 앞으로 연락하면 고소하겠다”는 취지로 직접 경고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부모의 연락 이후 피해 아동과 A씨 사이의 대화 내용이 삭제됐다. 경찰은 남아 있는 증거와 진술 등을 토대로 A씨를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지난 7월 서울북부지검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핵심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직 검찰 처분은 나오지 않았다.
중랑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가해자에게 ‘우리 아이를 만나지 마라’, ‘고소하겠다’고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면 피의자가 대화 내용이나 성착취물을 삭제하거나 휴대전화를 폐기할 가능성이 있어 수사와 처벌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자녀의 휴대전화를 삭제하거나 초기화하지 말고 그대로 보관한 뒤 피의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에 먼저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과 온라인게임 등에서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접근한 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녀의 피해 사실을 안 부모의 선제 대응이 오히려 수사를 꼬이게 만드는 사례도 나온다.
▶외모 칭찬부터 시작해 사진 요구·실제 만남까지=피해 아동과 피의자가 최초 접촉하는 경로는 인스타그램·카카오톡 오픈 채팅·X(엑스)가 대표적이다.
성인이 아동의 외모를 칭찬하고 작은 선물을 사주면서 라포를 형성한다. 상대의 경계심이 낮아지면 신체 일부를 찍은 사진을 요구한다. 종국에는 만나자는 제안까지 한다. 이른바 ‘그루밍’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협박이나 강요가 없이도 아동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또 다른 20대 남성이 모바일게임에서 12세 아동에게 접근한 사례도 있었다. 게임 채팅에서 시작한 대화는 이후 카카오톡에서 이어졌고 남성은 피해 아동에게 성적인 표현을 이어가며 신체 사진까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직접 성관계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신체 사진을 요구하면 성착취 목적 대화나 성착취물 관련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 피해자들이 범행 사실을 곧바로 부모에게 알리지 못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호감을 표시하면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범죄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부모에게 혼날까 봐 두렵거나 부끄러워 대화 내용이나 사진을 먼저 지우기도 한다.
마포서 여청과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개인정보나 사진, 동영상을 주고받다 보면 처음에는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처럼 보여도 나중에는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며 “학생들에게 작은 선물도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받지 말고 오픈채팅방 이용에도 주의하라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비중 10년 새 3배=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성평등가족부의 ‘2025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 및 동향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는 1049명으로 전체의 26.7%를 차지했다. 최근 10년 사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피해자는 1721명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의 87.3%는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가해자를 알게 됐다. 최초 접촉 경로는 채팅앱·오픈채팅이 42.5%, SNS가 33.6%였으며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례의 59.6%는 실제 만남으로 이어졌다. 2024년 전체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13.9세였다.
전문가는 부모의 개입 자체를 막기보다 피해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응 절차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부모가 직접 해결에 나섰다가 오히려 증거 확보나 수사의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모에게 개입하지 말라고만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감정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자녀의 안전을 확보하고 증거를 보전한 뒤 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과 연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전국 일선 경찰서에 아동 성착취 전담팀을 설치해 이런 아동 대상 성범죄를 도맡아 수사하도록 했다. 중랑서 여청수사5팀 관계자는 “자녀 휴대전화와 대화 내용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경찰에 신고하고 신체 접촉이나 성폭력이 의심되면 해바라기센터 등을 통해 법의학적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주원·김도윤 기자
jookapooka@heraldcorp.com
ki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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