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유럽연합(EU)이 ‘트럼프 대항마’를 찾는 캐나다의 구애에 적극 호응하면서, 캐나다가 최초의 ‘EU 준회원국(associate member)’으로 거론되고 있다. EU 준회원국은 경제·무역 측면에서는 EU 정회원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EU 결의 사안에 의결권은 없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유럽경제지역(EEA) 회원국과의 차별성을 위해 캐나다에 정치적인 발언권을 더 부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무역 갈등 때문에 미국을 대체할 우군이 필요한 캐나다에서는 ‘EU 준회원국’이라는 선택을 환영하겠지만, EU와 그 주변에서는 반대가 나올 수 있다. EU 가입 승인을 기다리는 국가 9곳을 제치고 갑자기 캐나다를 준회원국으로 받는 것에 대해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 캐나다가 분담금을 내지 않고 EU 정회원국에 준하는 권리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올 조짐이 보인다.
투표권 없는 EEA 형태 유력…‘스위스 입지 + 정치적 발언권’ 모델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연례 연설에서 캐나다를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연설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캐나다와 EU의 협력 범위를 국방부터 무역에 이르기까지 더 넓히고, 협력을 심화하며, 북극 탐사 등을 공동 추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캐나다는 사상 최초의 EU 준회원국이 된다. 유럽 의회 등 외교가에서는 EU 준회원국이 EEA 가입국이지만 EU 정회원은 아닌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과 비슷한 모델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EEA 국가들은 EU와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받는다. EEA 국가의 노동자가 EU 가입국으로 가서 일하는데 장벽이 없다는 것이다. EU와 교역할 때 관세가 붙지 않고, 대신 환경이나 노동 등에서 EU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법을 따라야 하지만, 법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게 EU와의 가장 큰 차이다. EEA 가입국은 EU의 의결 사항에 투표권이 없다.
일각에서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마크 카니 총리 모두 제조업, 기술, 방위, 에너지, 북극 등 다방면의 협력 분야를 언급한 점을 들어 EEA 가입국의 경제적 권한에 정치적 발언권이 다소 추가된 것 정도가 캐나다가 EU 준가입국으로 갖는 권리일 것이라 예상했다.
EU와 캐나다의 관계가 스위스와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정치적 관여가 더 클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유럽의회 무역위원회 위원장인 베른트 랑게는 블룸버그 통신에 EU와 캐나다와의 확장된 관계가 ‘EU·스위스 모델‘과 유사할 수 있으나, 캐나다의 정치적 관여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는 EEA도, EU가입도 거부하면서 대신 EU와 120개가 넘는 개별적인 양자협정으로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관세 동맹에는 빠져있지만, 솅겐 조약에 가입되어 있어 주변 EU 가입국들과 국경 통제없이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랑게 위원장은 “EU는 스위스와 1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꽤 긴밀한 협정을 맺고 있지만, 스위스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통합되어 있지 않다”라면서, 캐나다가 완전한 투표권은 갖지 않으면서도 EU의 의사결정에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캐나다만 특별대우?…회원국·가입신청국 불만이 관건
캐나다는 이미 EU의 방위조달 대출 프로그램인 SAFE 참여국이면서 CETA 체결국이기도 하다. SAFE는 EU가 방위 산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무기 및 군사 장비의 공동 조달 목적으로 1500억유로의 대출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CETA는 10년전 캐나다와 EU 간 체결된 포괄적 경제무역협정으로, 이 덕분에 양측의 교역 상품 중 99%가 관세없이 거래되고 있다. 여기에 양측은 서비스, 금융 등의 이동을 촉진하겠다는 복안을 짜고 있다.
캐나다 내부에서는 EU준회원국 지위 확보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캐나다는 자국의 1위 교역국을 대체할 시장 확보가 급선무다. 이달 초 실시된 아바커스 데이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응답자의 80%가 외교·국방·경제에서 EU와의 긴밀한 협력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단, EU 정식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는 의견은 49%로 훨씬 낮아, 준회원국 정도로 밀착 수위를 조절하는게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EU 정회원국이나 EU 가입 대기중인 국가들이다. EU는 이미 가입을 위해 대기중인 국가가 9곳이나 된다. 특히 예비 회원국인 우크라이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제안했던 ‘가벼운 회원국(membership light)’ 개념을 거부하고 정회원국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이 국가들에는 EU의 규정 준수를 요구하면서 까다로운 심사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캐나다에 기존에 없던 ‘준회원’ 지위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
최근 향후 7년간의 분담금 규모를 협상중인 EU 정회원국들도 캐나다를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데 불만을 표할 수 있다. 정회원국들은 가뜩이나 국방비 등 늘어난 분담금으로 부담을 호소하는데, 준회원국이 분담금을 내지 않고 회원국에 준하는 혜택을 본다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 준회원국 구상을 제안한 폰데어라이엔은 다음달 몬트리올에서 마크 카니 총리와 만나 EU·캐나다 정상회의를 열 예정이다. 그때까지 유럽의회와 EU 이사회 승인을 받아 가시적인 진전을 보이는 것이 양국 정상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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