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등심 정식이 2만6000원이니까 맥주 4000원 보태면 3만원 딱 맞네. 참, 밥 먹고 커피는 어쩌지?” “그건 더치페이.”
27일 점심시간,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머리 셈을 하고 있다. 코앞에 다가온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맞춤형 식사 메뉴에 대한 고민의 일단이다. 이처럼 정부세종청사는 오는 28일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 ‘예행연습’이 한창이다. 식사에 선물 가격 맞추기부터 예정된 행사나 간담회, 강연 등이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미리 파악해 두자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화두는 역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 등 가격 상한선을 정해놓은 ‘3ㆍ5ㆍ10 ’이었다. 28일 이후 공식행사나 식사자리에 참석 인원을 예상해 가격대를 미리 맞춰놓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계획된 일정들이 직무상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각 부처별로 행사나 모임의 성격이 다르지만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사나 식사제공 자체가 불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경우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단체들과의 만남이 재정과 관련된 사안이 많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업종이나 개별 기업 관계자들과의 접촉이 잦아 법 시행 전에 적용대상과 사례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특히 요즘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는 행사를 앞두고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가는 일이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환경부 한 공무원은 “10월 간담회 행사가 잡혀 있는데 공식 행사로 인정되는지 유권해석을 듣기 위해 다녀왔다”며 “권익위로부터 직무와 직접적 이해관계 여부, 언론 등 특정 대상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형식적인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호한 유권해석으로 혼란이 가시지 않자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일부 공무원은 당분간 사적인 모임이나 개별적 만남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공무원은 “10월 보름치 모임이나 약속은 모두 뒤로 미뤘다”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면 말 그대로 ‘시범 케이스’로 걸릴 수 있어 상황을 지켜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파파라치를 말하는 일명 ‘란파라치’들도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위반 현장 적발시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란파란치들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란파라치들이 장사진을 쳐 세종청사 주변에 원룸 등 빈방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변 식당들은 벌써부터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코스 메뉴가 5만원~20만원인 일식집의 경우 ‘생물’인 특성상 단가를 낮출 수 없어 양을 줄여 2만9000원짜리 점심 특선 메뉴를 내놓기로 했다. 일부 고깃집도 단가를 낮춰 3만원 이하의 ‘김영란 메뉴’를 만드는 대신 일부 서빙 직원을 감축할 계획이어서 이제 고기도 손님이 직접 잘라 먹어야 할 상황이되고 있다.
한 한우전문점 사장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모임, 약속이 눈에 띄게 줄어 매출이 20~30% 빠졌지만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어쩔 수 없이 가격 조정을 했다”며 “직원도 8명에서 16명으로 늘렸는데 인건비에 임대료, 관리비까지 맞추려면 도로 인원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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