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의열단의 활약상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에서 이중 밀정 역할을 한 이정출(송강호 분)이 일본 경찰로 변절한 이유를 묻자 ‘독립이 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한다. 의열단 내부의 일본 밀정 조회령도 변절을 한 이유가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 분)은 승산 없는 싸움을 끝까지 하다 잡혀 고문을 당한다. 계산이 빠른 사람은 의열단의 행보가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어리석은 김우진이 체포되기 전 이정출에게 한 말은 감동적이다. ‘고마웠어! 형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정치인은 계산에 능한 사람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자신에게 이익인지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그들이 잘 쓰는 정치공학이란 말은 실은 정치계산의 다른 표현일 뿐 공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치9단이라는 말도 그렇다. 그들 중에서도 정치계산의 특출한 고수가 또 존재한다. 정치계산이 능한 고수는 말을 자주 바꾼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다. 이러니 나중에 계산의 값은 치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실제 계산도 잘하지 않는지 모른다. 요즘 모두 떠는 김영란법이라도 당해낼 수 없다.
돌이켜보면 조선이, 대한제국이 망하기 전에,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기 전에, 지금도 역사 청산이 되지 않아 국가가 힘들기 전에, 그것을 막기 위해 행동했던 정치인이 몇 명이며, 진심으로 경고라도 했던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그들에게 그 이유를 질문하면 대부분 나라가 망할 것 같았거나, 이후에는 독립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 것이다. 이정출은 나중에라도 자신의 계산을 뉘우치며 애국적 행동이라는 값을 당당히 치렀지만 그들은 무슨 값을 치렀는가.
국가에 위기가 닥쳤는데 이런저런 논리와 상황을 들먹이며 위기를 호도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계산이 빠른 그들만의 이른바 정치공학적 접근이거나 당파적 진영논리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각 당의 대권 정치계산도 더해져 있다. 하지만 북핵은 국가 존망의 실제적 위기며, 경제위기는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제 상시 위기의 고질병이 될 것이다. 물론 정치인에서는 정치가 중요하다. 그래도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법은 멀고 정치공학만 난무한다면 문제다.
최근 국회에는 장관 해임안의 통과와 관련해서 ‘맨입’과 ‘단식’이 충돌했다. 국회의장은 장관 해임안을 법에 따라 처리해서 잘못이 없다고 했지만 맨입의 발언은 그것이 정치공학적 행위였음을 방증한다. 대한민국에서 장관은 정치적 거래와 국회의 괘씸죄에 걸리지 않아야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와중에 집권당의 대표가 단식으로 응수했다. 집권당의 대표 자리도 3D업종이거나 극한직업의 하나가 된 것 같다. 이정현 대표의 행동은 과하게 보이지만 국회의장의 정치행위에 대응하는 또 다른 정치행위인 것은 확실하다. 그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가 보여주는 결기는 인정할만하다. 그것은 정치공학을 내세우며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는 정치9단의 모습도, 정치 행위가 필요할 때는 법을 내세우고 법이 필요할 때는 정치를 내세우는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도 아니다. 물론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지만 행동으로 그 계산의 값도 치른 모습이다. 이에 비해 국회의장의 사생활을 캐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어쨌든 국감은 시작됐다. 국회의원들은 호통을 치고, 기관장들은 몇주 동안 답변연습만 하고, 각종 기관은 국회의원실에서 과하게 요구한 자료도 만드느라 정신없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국회에게, ‘고마웠어! 국회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 과욕일까.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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