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공시에 올빼미 공시, 깜깜이 공시, 양치기 공시, 뻥튀기 공시… 매년 20여건…제재는 솜방망이 개미 울리는 불성실공시 제재 강화해야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늑장공시’ 의혹을 받고 있는 한미약품 임직원들이 공매도 세력에게 카톡을 통해 악재를 사전 유출한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개인투자자(개미)들에게 혼란을 주는 기업들의 무책임한 공시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각종 제도 개선에도 불구, 불성실공시를 일삼는 기업은 2010년 이후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개미들에게 큰 손실을 입힌 늑장공시 뿐 아니라, 주말을 앞두고 장마감후 살짝 악재를 내놓는 ‘올빼미 공시’나,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수준만 공개하는 ‘깜깜이 공시’, 내용을 부풀리거나 아니면 말고식 ‘양치기 공시, 뻥튀기 공시, 하나마나 공시’ 등도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한미약품 사태를 계기로 이들을 대상으로 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시 잘못해도 상장폐지는 안 된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9월 코스피 상장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건수는 16건이다.

주요 경영사항을 공시 기한 내 신고하지 않는 공시 불이행ㆍ번복ㆍ변경 등이 적발되면 거래소는 해당 기업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최대 2억원의 과태료와 벌점이 부과되고, 벌점에 따라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여부 심사에 들어간다.

올 들어서는 코아스, 광희리츠, 영진약품공업, 웅진에너지, OCI, 핫텍, 현대페인트, 세원정공 등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과 함께 벌점이 부과됐다.

각종 허위공시로 논란을 빚은 중국원양자원의 경우 누적벌점 30점으로 관리종목에 편입된 상태다.

다만, 벌점 누적으로 상장폐지까지 이른 사례는 전무하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로 넘어간 기업은 지난해 유니켐이 유일하다.

유니켐은 누적벌점 60점으로 존폐의 기로에 섰으나, 1년간의 개선기간이 부여된 후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이는 기업의 무책임한 공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 2010년 이후 매년 20~30여개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고 있다.

▶공시, 이렇게도 할 수 있답니다…투자자는 ‘뜨악’= 공시 위반의 선은 넘지 않았지만, 투자자는 안중에도 없는 공시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이나 연휴 직전에 기업에 불리한 내용을 공시하는 ‘올빼미 공시’도 수시로 출몰한다.

5일간의 긴 연휴가 이어진 이번 추석에도 예외는 없었다. 지난달 13일 장 마감 후에는 일부 상장사의 공급계약 해지 소식, 주식양수도계약 해지 소식, 신규사업 투자를 위한 타법인 취득 인수계약 철회 소식 등이 이어졌다.

장중 집중되는 투자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점에서 불성실공시나 다름없지만, 당국의 제재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계약 금액이나 상대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깜깜이 수주 공시’는 일부 코스닥 업체가 즐겨 사용하는 공시법(?)이다.

계약 건에 대한 사실만 알린 후, 계약 상대방의 ‘영업비밀’ 요청으로 세부 내용은 일정기간 후에 재공시하겠다고 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현행 공시제도가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공시유보를 허용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구체적인 수주 정보가 없음에도 해당 종목은 대부분 상승세를 탄다. 개미(개인) 투자자들은 ‘수주’ 자체를 호재로 받아들여 매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서 해당 기업의 계약 금액에 대한 막연한 추측이 이어지고, 이에 기반한 매매가 이뤄질 경우 투자자 피해는 더욱 커진다.

공시위반 사항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양치기 공시’도 단골 소재다. 호재성 공시로 주가를 띄운 뒤 번복하는 경우다.

연초 한 코스닥 상장사는 중국 기업과 공동사업을 추진한다고 공시한 후 주가가 20%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항이 5개월 만에 철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초 공시를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하나마나 공시’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대상이다.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한 상장사에 대해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할 때, 일부 상장사는 “확정된 사항이 없다”며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다. 투자자로서는 맥 빠지는 상황의 연속이다.

▶투자자 신뢰 잃는데…왜 그럴까=거래소는 지난해 제도 개선을 통해 공시위반 제재금 한도를 2배(1억원→2억원) 높였다.

하지만, 올해도 10여 개 상장사가 불성실공시법인 대열에 들어선 데 대해 “‘양치기 공시’ 등으로 얻는 수익이 제재금보다 더욱 크기 때문”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불성실공시로 인한 ‘주가 상승’은 꽤 짭짤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행 공시제도를 손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도 대안 마련에 분주해졌다.

특히 한미약품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공시할 수 있는 영역은 일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율공시 대상은 사유 발생 다음 날까지만 공시하면 되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도 규정상으로는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의무공시 사항으로 바뀌면 특별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공시 시한을 당일로 앞당길 수 있는 등 공시 내용과 시점이 더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규제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상장 기업의 인식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불성실공시는 기업문화가 올바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투자자 보호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충분하다면,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실장은 “기업의 투자자 보호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또한 경영진에 대한 압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는 집단소송으로도 갈 수 있다는 점도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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