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원혁 기자] 가로수길. 과거 압구정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지역에 소규모 스튜디오와 갤러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패션 업계 종사자, 연예인, 사진작가 등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가로수길은 ‘제2의 명동’으로 불리며 중국과 일본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주말 행선지로 바뀌었다.

거리에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대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편집숍 대신 대형 글로벌 브랜드 매장들이 자리를 꿰찼고 애써 상권을 일궈 놓은 영세 상인들은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거대 자본에 자리를 내주고 계속 쫓겨나고 있다. 결국 동네 영세 상인들은 그대로 사라지거나 메인거리 뒤편의 골목길로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로수길 점포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골목상권이 다시 타깃이 되고 있다.

동네 영세상인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임대료 때문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에 편승한 일부 업종의 호황이 상가 임대료 인상으로 직결되면서 세입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사진은 이태원 경리단길 모습. [사진=헤럴드경제DB]
동네 영세상인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임대료 때문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에 편승한 일부 업종의 호황이 상가 임대료 인상으로 직결되면서 세입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사진은 이태원 경리단길 모습. [사진=헤럴드경제DB]

가로수길에 대형업체들이 앞다퉈 진출하다 보니 일대 상가 권리금과 임대료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전형이다.

골목상권으로 옮겨 의류숍을 운영 중인 박서연 씨는 “가로수길에서 밀리고 난 뒤 애써 자리를 잡아 놨는데 이곳마저 임대료가 수백에서 수천만원씩 계속 오르고 있어 다시 자리 내주고 쫓겨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스튜디오, 갤러리, 공방 등 예술가들의 거점이 생기면 자연스레 문화인들이 즐겨 찾을 만한 카페, 식당들이 줄이어 문을 연다. 이후 그 동네는 ‘물이 좋다’고 입소문 나고 더 많은 카페와 식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든다.

이태원 경리단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중 하나다.

경리단길은 버스나 지하철로 서울 중심지인 명동이나 광화문까지 5~10분 이내에 갈 수 있어 입지조건이 좋다. 과거엔 용산 미군부대 영향으로 발길이 뜸한 ‘달동네’ 이미지가 강했지만 소규모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젊은이들이 몰리고 경리단길 상권이 주목 받으니 도로와 골목 구석구석까지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경리단길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지역이 뜨니 상가는 한정돼 있고 임대료가 오르는 건 당연시 됐다”며 “건물주가 부르는 게 값이라 이번에 재계약은 했지만 다음에 또 오르면 나갈 수 밖에 없다”며 토로했다.

결국 임대료 문제로 초기 상권을 이룬 일등공신(?)인 동네상인들이 떠나고 그 자리에 비슷한 업체들이 몰리면서 지역의 활기와 개성은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가 홍대(연남ㆍ상수), 이태원(경리단길ㆍ이태원)의 젠트리피케이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연남(195%), 상수(132%), 경리단길(132%), 이태원(86%) 순으로 전년 대비 음식점 개업신고 수가 늘었다. 또 같은 기간 상수의 66%, 연남의 60%가 외지인 소유로 조사됐다. 내지인과 외지인의 비율은 상수동이 2004년, 연남동이 2013년 각각 역전됐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임대료 때문에 고통받는 영세상인들이 허다하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상가 밀집지역에선 하루가 다르게 들썩이는 임대료에 자영업자들이 편할 날이 없다. 그런 이들에게 해마다 인상되는 임대료는 공포 그 자체다.

게다가 이들이 옮겨간 지역에서도 또 한번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면 뜨는 동네 이면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cho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