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의무 제출해야” 요구 낙찰자 내정해놓고 입찰공고도
#1. 경영 컨설팅 기업을 창업한 A 씨는 최근 정부산하 공공기관의 학술연구용역 과제 입찰 과정에서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한 공공기관의 입찰공고에 “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문구가 버젓이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용역 수행기관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경우는 있지만,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는 찾기 어려워진 ‘악습(惡習)’이다.
#2. 또 다른 경영 컨설팅 기업을 운영 중인 B 씨 역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공공기관이 학술연구용역 입찰 과정에서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과제수행’을 유독 강조하기에 평소 친분이 있던 유명 대학 C 교수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는데, “사실 해당 연구는 (C 교수) 본인을 비롯한 일부 대학 연구소가 이미 오래전부터 협력 수행 중이다. 다른 업체가 과제를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학술연구용역 공공구매제도 운영 행태가 창업·중소기업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공공구매 제도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비롯 지방자치단체 투자기관 등이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가운데 학술연구용역은 계약규모가 1억원 이하인 경우 소기업에, 1억원 이상~2억 1000만원 이하인 경우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행한 소기업 확인서 등을 통해 기업규모만 입증하면, 비슷한 덩치의 기업들과만 제한된 상황에서 기술력을 경쟁해 과제를 낙찰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일부 공공기관이 과제 수행능력 평가기준 중 하나로 여전히 재무제표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기부 판로정책과 관계자는 “입찰 기업의 지속가능성,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 평가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재무제표만으로는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다”며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대다수 공공기관은 기술평가를 중심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과제 수행자를 내정해두고 입찰공고를 올리는 경우도 문제다. 일부 공공기관이 정책 연속성을 이유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던 비영리단체 및 기관에 유리한 입찰고를 내는 경우다.
A 씨와 B씨는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확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도 공공입찰 시 재무제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부 차원에서 산하 공공기관의 이 같은 비위를 철저히 단속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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